음악, 탐정.

일견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나는 도전한다.

by 김유려

나는 9살 때 셜록 홈즈를 처음 접했고(아동용 문고판 따위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셜로키언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며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에드거 앨런 포, 엘러리 퀸을 뗐고 길버트 체스터턴까지도 손댔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어린 내가 보기에 너무 잔인해서 중간에 그만둔 사건들도 있지만.

나의 추리소설 사랑은 그 후로도 줄지 않았다. 나는 점점 아는 작가, 아는 트릭, 아는 작품이 무수히 많아졌고 추리소설/범죄소설 '덕후'가 되어갔다. 그리고 덕후의 최종장에 이르렀다. 바로 추리소설을 직접 쓰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독자로서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끝자락에 도달하는 순리 아니던가.

나는 왠지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익숙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상을 무조건 싹쓸이해왔다.


우리 친가 쪽이 작가 집안이다. 친할아버지도 전업 작가이셨고, 큰아버지 두 분도 작가이시다. 글을 쓰는 것 같은 '능력'이 대물림되는 게 가능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설명하면 대부분 "그래서 네가~" 하며 납득한다.


10년도 더 전부터 추리소설을 구상했지만 나는 너무나 완벽한 트릭, 완벽한 플롯을 그야말로 소설처럼 어느날 갑자기 떠올리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작품이 딕슨 카보다 더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와 코난 도일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 애거서 크리스티보다 더 반전있는 결말, 엘러리 퀸보다 더 합리적인 퍼즐이 합쳐진 완성품이기를 원했다.


한 달 반쯤 전인가. 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지금과 비슷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꼭 첫 작품부터 완벽해야 할 필요가 있어? 네가 존경하는 그 작가들도 초반 작품부터 대단하지는 않았을걸? 다들 몇 편씩 쓰면서 다듬어졌을 거야."

그 때부터였을까. '누구도 생각 못할 엄청난 트릭'에 대한 집착을 좀 내려놓은 것은. 나는 언제나 상상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캐릭터 구상을 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트릭은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독자를 속일 수 있도록 사건의 진상을 이리저리 찢어서 헷갈리게 배치해 놓았다. 어차피 추리덕후들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추리덕후 중의 하나이므로. 요즘 출판되는 추리소설의 7~8할은 결말을 보기도 전에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눈치챈다. 이런 독자는 지금의 내 필력과 상상력으로는 못 속인다. 평범한 독자를 공략하기로 했다.


탐정 캐릭터의 시그니처는 어느 날 음악을 틀고 운전하다가 머리에 불이 탁 켜진듯 떠올랐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 음악을 이용하는 탐정.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탐정소설을 다 보지는 않았으나 음악과 탐정을 조합한 유명한 시리즈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한창 쓰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아직 작가 흉내를 내는 아마추어 주제에 제법 즐겁게 집필하고 있다.


내가 만들어낸 '박자를 타고 리듬을 읽는 탐정'의 세계.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쓰다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다른 시리즈를 만들 수도 있을까? 혹은 내가 꿈꿔왔던 '완벽한 완성품'을 언젠가 떠올릴 수도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