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서 2

시어머니

by 라온지니

내 나이 26, 엄마의 나이 49에 엄마는 담도암이었다.

암을 떼내고 혹시 다른 곳에 전이되었을지 모를 암을 찾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의 수술날, 우리 가족은 엄마가 암을 모두 떼내고 방사선 치료를 하며 암을 치료하면 될 거라 예상하며 회복실로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대기하던 중 갑자기 의사가 엄마의 보호자를 호출하였다.

아버지는 급히 수술실에 들어갔고 의사는 엄마의 몸 여기저기에 전이된 암덩어리들을 보여주며 수술이 무의미해서 그냥 중단해야겠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수술을 중단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해서 급히 호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운을 벗으며 수술실에서 나오던 아버지의 얼굴엔 어둠이 가득했다.

그리고 내려진 6개월, 의사말로는 길어야 6개월 정도의 시간만 남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 모두는 여기저기 수소문을 시작했다. 암환자 보호자들의 책을 사서 읽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각종 보약이나 영양제를 사기도 하고 음식을 바꿔야 한대서 좋다는 음식으로 식단을 바꾸기도 하였지만 엄마의 병세는 나날이 안 좋아져만 갔다.

우리의 절박함으로 인하여 병원에서는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라도 해보자고 하여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치료를 시작하니 머리는 다 빠졌고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몸은 더욱 야위어만 갔다.

또한 몸의 칼슘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걸음을 걷기도 힘들어졌다.

결국 해볼 수 있는 항암치료마저 모두 중단하게 되었다.

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음을 알리는 상황과 같았다.

황달이 심해져 몸이 누렇게 보이고 온몸의 근육이 마르니 핏줄색깔이 그대로 비춰 보여서 누런 가죽에 핏줄만 퍼렇게 툭 튀어나와 보였다.


엄마의 암투병상황은 시댁에도 알려졌다.

아버님은 시댁을 찾아갈 때마다 어머니의 상태는 어떠신지 호전이 되는 건지 물어보셨다.

매번 나의 대답은 "점점 안 좋아지세요"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아버님이 어머님께 말씀하셨다.

며느리 친정어머니가 많이 안 좋다고 하시니 전복죽이라도 해서 한번 병문안을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다음에 또 시댁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의 병세를 물어보셨고 어머님께는 병문안을 다녀왔느냐고 물어보셨다.

아직 다녀오지 않았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이번 주는 꼭 한 번 다녀오라고 당부하셨었다.

다음번 시댁방문 때 아버님은 또 다녀오셨는지 어머님께 물어보셨지만 다녀오지 않았다는 말씀에 이번엔 화를 버럭 내시며 말씀하셨다.

"왜 한번 병문안 다녀오라니깐 안 가는 거야!! 사돈어른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나중에 며느리 얼굴을 어찌 보려고 그래!!"

아버님의 말씀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죽음의 고통에도 아프다는 말씀도 안 하시고 끝까지 묵묵히 고통을 참아내다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엄마의 나이 50이었다. 시어머니보다 두 살 어린 나이었다.

시어머니는 살아계신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으셨다.

시어머니는 아버님과 같이 장례식장에 걸린 엄마의 영정사진으로만 엄마를 보셨다.

나중에 사둔 돌아가시면 며느리 얼굴을 어찌 볼 거냐는 아버님의 말씀이 엄마에게 살갑게 하지 못했던, 드시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못난 딸의 죄책감을 덜게 해주는 말씀이 될 줄 몰랐다.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겹쳐지는 그림이 될 줄은...

그렇게 우린 엄마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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