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면 물린다. ‘이사라면'이라 쓰고 보니 무슨 라면 이름 같기도 하지만 물리는 건 ‘라면’이 아니라 ‘이사’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구로 옮긴 뒤 20년을 같은 집에서 살았다. 반대로 결혼 후에는 33년 동안 13번, 두 해 반마다 한 번 꼴로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다. 대륙을 넘나든 이사도 있었고 원치 않게 집을 떠난 적도 있었다. 남편 사주에 역마살이 끼었다더니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옮겨 다닌 집마다의 추억도 한 보따리씩이다.
두 달 전에 나는 또 이사를 했다. 등기를 마치고 이사하기 전, 커튼 견적과 집수리 관계로 오전 11시경 새집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문과 문틀에 필름 작업을 하는 40대 후반, 60대로 보이는 두 분이 일을 하고 계셨다. 인사를 나눈 후 바로 커튼 가게 젊은 사장이 도착하여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필름 작업하는 걸 지켜보았다. 찍히고 긁힌 문이 새 옷을 입고 환골탈태하는 과정은 멋지고 재미있어 보였다. 어찌나 시원시원하게 일을 하시는지 묵은 체증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너무 재미있어 보여요.”
“맨날 해보세요. 어디 재미있나….”
하긴, ‘듣기 좋은 사랑 노래도 한 두 번’ 이라지
정오가 되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밥이 왔구나.”
"아, 제 것도 시켜주시지….”
새 문이 되어가는 모습을 좀 더 보고 싶기도 하고 출출했다. 게다가 일 하시는 분들과의 서먹함도 깨고 싶어 나도 몰래 생각 없이 불쑥 나온 말이었다.
“진즉 말씀을 하시지….”
“커튼 가게 사장님이랑 얘기 나누느라 시키신 줄 몰랐지요. 괜찮아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갈 거예요.”
배달된 음식을 분명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는데 집 안 어디서고 두 분이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일하는 내내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집 안이 조용해지니 혹시 집 밖 계단에라도 나갔나 싶었지만 거기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자니 일하시던 젊은 분이 내게 다가와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겸연쩍은 표정으로 내밀었다.
“이 거라도….”
봉지를 열어보니 쑥을 넣고 빚은 바람떡 한 팩과 커피 캔 하나가 들어있었다. 따끈한 채 배달된 본인의 식사를 뒤로 미루고 밖으로 나가 내가 먹을 걸 사 가지고 온 거였다. 두 분이 말씀 나누시는 소리가 복도 끝 방에서 그제야 들려왔다.
감동이었다. 집주인이 일하시는 분의 음식을 대접하는 건 봤어도 일하는 분이 집주인에게 먹을 걸 사주는 진기한 광경이 벌어진 거다. 내가 보행기에 의지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점심을 구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측은지심이라... 떡 한 조각, 한 조각이 따뜻하고도 풍성한 감동이 되어 내 배속을, 내 맘속을 차곡차곡 채웠다.
오후 4시경이 되자 남편이 일찍 퇴근하여 새집 현관으로 들어서다가 일을 마치고 나가시던 분들과 마주쳤다.
“사모님 저녁 맛난 거 사드리세요. 점심도 변변히 못 드셨어요.”
남편을 보고 웃는 그의 치아가 하얗고 가지런했다.
떡 한 팩, 커피 한 캔의 감동은 아마도 내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잔잔하게 일렁일 성싶다. 그날, 그가 내민 “이 거라도...” 한마디가 그 어떤 만찬보다 오래도록 더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