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헤드폰

by 김봄빛


명절을 지내고 4 남매가 한자리에 모이자 엄마는 이제 당신께 필요 없어진 물건들을 우리 앞에 내어 놓으셨다. 거의 대부분이 우리가 그간 사드린 물건들이었다. 엄마는 누가 무엇을 사드렸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시고 사 준 사람 앞에 물건들을 분리해 놓으셨다. 우리는 각자 앞에 놓인 물건들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물물교환 장이 열렸다. 막내가 사드린 헤드폰이 탐났다. 자상한 막냇동생이 선뜻 내게 헤드폰을 내밀었고 간단한 사용방법까지 일러주었다.



이튿날, 나는 성능 좋은 헤드폰을 테스트 해보기로 했다. 마침 날도 좋으니 헤드폰과 함께 망중한을 즐겨볼 참이었다. 남편이 출근하자 일찌감치 나름의 거사(?)를 준비했다. 베란다 의자 옆 작은 테이블에 따끈한 차 한 잔을 가져다 놓고 초에 불을 붙였다. 베란다 창문을 한껏 밀어젖히고 방충망까지 열자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아름다웠다.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호수와 그 위에서 춤을 추며 반짝이는 윤슬이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를 흩뿌려 놓은 듯했다. 가을로 향하는 아침 공기는 더없이 맑았고, 이슬을 밤새 머금었다가 내뱉는 나무의 호흡과 함께 호숫가 숲에서 올라오는 향긋한 내음은 수줍은 새색시의 분 냄새 같았다. 한 겹 타놓은 목화솜같이 얇고 폭신해 보이는 흰 구름과 푸른빛 파스텔 톤의 하늘,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 잎의 색깔을 바꾸기 시작한 나무들은 푸르렀던 초록의 시간을 뒤로 하고 편안한 맘으로 흐르는 계절에 몸을 맡긴 듯했다.


동녘하늘에서 날아온 검은 새 두 마리가 나란히 하늘 위로 높이 올랐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정적인 풍경에 동적인 리듬을 더 했다. 간간이 살랑거리는 기분 좋은 바람이 나를 간지럽히고 지나갔다. 쨍한 주황색 쿠션이 깔린 의자의 등받이를 한껏 뒤로 젖히고 몸을 뉘였다. 경이로운 자연과 함께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질 좋은 ‘7080 팝송’은 내 감성을 몇 단계 상승시키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헤드폰 때문에 시작된 거사가 생각보다 더 거사스러워졌다. 매혹적인 향과 은은한 맛의 차를 한입 머금자 오감이 기지개를 켜고 내 온 몸의 센서를 여기저기 마구 눌러댔다. 축복이었다. 내 있는 곳이 무릉도원이니 나는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를 자연과 더불어 무릉도원으로 데려다주는 헤드폰이지만 엄마는 그게 다루기 만만치 않은 차가운 기계였을 뿐일 게다. 손에 익지 않으니 잘 안 쓰게 되고 잘 안 쓰니 더 익지 않다. 엄마 옆에 몇 날이고 붙어 앉아 익숙해지실 때까지 알려드리면 좋으련만 자식들도 다들 자기 살기 바빠 엄마는 뒷전으로 자꾸 밀린다.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가 막 끝나고 X세대의 시작점에 태어난 내가 MZ세대나 알파 세대가 누리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더 편하듯이 엄마는 나보다 더 그럴 게다. 나도 내 아이들이 이것저것 새 문물을 들고 와 가르쳐주려 하지만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마음만큼 쉽지 않아 얼른 손이 가지 않는다. 그게 나이 든 증거인 모양이다. 그러니 엄마는 오죽하겠는가,


30년 가까이 외국에서 살던 내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무척 좋아하셨다. 자식이 제 살 길을 찾아 떠난다니 말릴 수는 없었지만 돌아오니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않으셨다. 큰 딸인 나는 여러모로 엄마를 많이 닮았고 엄마의 취향이 어떤지도 훤히 꿰고 있다. 멀리 살지만 온라인으로 이것저것을 주문하여 드리면 엄마는 온라인이라는 신문물에 감탄을 하신다. 감탄을 하면서도 쓰실 줄 모르고 배우려고 하시지도 않는다. 내 할머니는 TV 리모콘조차 쓰기 힘들어하셨으니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글퍼진다.


10 년 전쯤에 엄마에게 태블릿을 처음 사드렸다. 엄마는 그걸로 유튜브도 보시고 게임과 카톡도 하신다. 태블릿은 핸드폰보다 크고 무겁긴 하지만 화면이 넓으니, 엄마는 집에서는 휴대폰보다 태블릿을 선호하신다. 게임의 재미와 카톡의 필요성을 인지하자 태블릿을 금방 익혔던 엄마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새 것을 못 익히실까? 왜 배워야 하는지 동기부여만 되면 하실 수 있을 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노인에게도 통한다. 단지 시간이 더 걸릴 뿐.



엄마께 헤드폰을 다시 돌려드려야겠다. 무릉도원도 엄마보단 내가 누릴 날이 더 많다. 내 어쩌자고 생각 없이 엄마의 헤드폰을 덥석 집어 왔는가. 엄마께 그 헤드폰을 사 드렸던 속 깊은 막냇동생이 생각 없는 큰 누나를 어찌 여겼을지…. 딸년은 도둑년이라더니 내가 꼭 그 짝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나훈아의 노래를 좋은 음질로 감상하실 수 있게 태블릿에 깔아드리고 헤드폰도 손에 익도록 몇 번이고 알려드려야겠다. 엄마가 무릉도원 번지수를 혼자서도 잘 찾아 그곳으로 자주 마실 다녀오실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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