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마약

by 김봄빛




10 년 전쯤 ‘욜로(YOLO)’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2011년 캐나다의 가수 ‘드레이크’가 그의 노래 ‘The Motto(더 모토)'에 욜로라는 말을 가사로 등장 시키면서부터, 지금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20, 30대의 욜로족을 만들어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라는 뜻으로 문장 속 매 단어의 첫 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욜로를 신조로 사는 사람들을 욜로족이라 부른다.


욜로라는 말이 막 번질 때쯤, 우리 부부는 결혼 20 주년을 맞았다. 남편이 “그간 수고했으니 좋은 가방이라도 하나 사러 갑시다”하고 제안했다. 가방을 파는 매장에서 이것저것 살펴보자니, 가게 안이 자기 안방인양 들뜬 목소리로 점원과 얘기를 나누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큰 쇼파에 앉아서 신발을 신어보고 있었는데, 내가 진열되어 있는 가방을 보려고 그의 근처로 다가갔을 때, 그가 검은 구두와 갈색 구두를 양손에 들고 “둘 다 맘에 드는데 어느 걸 사지?”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둘 다 사세요. 다 좋아보이네요.” 시끄러운 그가 살짝 얄밉기도 하고 빨리 가게를 떠나줬으면 좋겠다 싶어 내가 한마디 참견을 했더니 그가 좋아하며 대답을 했다. “맞아요.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요!”

그는 만만치 않은 값의 구두 두 켤레를 다 사 가지고 가게를 나섰고 나는 그가 던진 말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욜로라는 말을 들어보았고 그 말이 한 번뿐인 인생이란 뜻인 줄도 알았지만 그 말이 그렇게 쓰일 거라곤 상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뿐인 인생이면 값어치 있게, 안중근 의사나 슈바이처처럼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는 말인 줄 알았더니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일을 미루지 말자라는 뜻이라니……. 범생이 같은 내 나름의 해석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원하는 것에 돈 아끼지 말라는 그럴 듯한 상술이었다. 상술도 이제 철학적이구나 싶었다.


욜로족이 있는 반면에 ‘파이어족’도 있다. 파이어(FIRE)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매 단어의 첫 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이른 은퇴를 하자는 뜻이다. 그들은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소비를 최소화하는 삶을 통하여 경제적 안전지대에 빨리 진입함으로써 40대에 조기 은퇴를 목적으로 한다.


실제로 구글이나 애플 같은 크고 탄탄한 회사에 다니며 연봉이 수억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큰 화물 트럭의 짐칸에 침대를 들여놓고 사는 이도 있다. 잠은 트럭 짐칸의 침대에서 자고 씻는 것은 운동시설에서 해결한다. 미국에 있는 큰 규모의 Gym(체육관)에는 운동시설뿐만 아니라 사우나와 샤워실이 갖춰져 있다. 또한 회사 내에서 직원을 위한 운동시설과 샤워실을 제공하는 회사도 있으니 어디에서 씻을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찜질방이 씻고 숙박이 되는 곳이라면, 미국의 체육관은 운동과 몸을 씻는 일이 해결되는 곳이다.


FIRE족은 자신은 트럭에서 잠을 자지만 높은 연봉으로 이미 그들 명의의 집을 한두 채씩 소유하고 있는 이도 있다. 한국에서 일부 유튜버들이 파이어족을 부모로부터 큰 돈을 물려받아 일 안 하고도 먹고 사는 금수저쯤으로 소개하기도 했다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근검절약을 신조로 아끼고 모은다. 그들의 자산이 목표에 이르렀을 때 조기 은퇴를 한 후 남은 생을 직장과 금전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사람들이다.

실례로, 남편이 다니던 회사의 어떤 이는 중부에서 켈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로 취업하여 회사 주차장에 세워둔 그의 RV(캠핑카)에서 자고 회사에서 씻으며 몇 년을 버티다가 서른 중반에 몇 십만불(수억)을 손에 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처자식이 있는 자신의 고향에서 큰 농장을 장만하여 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었을 때 그는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 엔지니어로서 조기 은퇴 하였고 농장주인으로 재 취업한 셈이었다.




욜로족이든 파이어족이든 각자의 신념대로 사는 거지만, 내 생각엔 양쪽 다 너무 극단에 치우친 게 아닌가 싶다. 욜로하다가 ‘골’로 갈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할 일이고, 파이어하다가 자신의 아름다운 젊은 날들을 ‘파이게’ 만들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내가 자란 경상도에선 ‘나쁘게’를 ‘파이게’라고도 한다.

우리 세대는 욜로족보다는 파이어족에 가깝게 살았다. 부모님 세대는 더 그랬다. 경제적 자립을 꿈꾸며 열심히, 부지런히가 삶의 신조였다. 내 남편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월급쟁이다. 그는 사업가적인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지만 딸린 식구들 건사하느라 사업가의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는 늘 월급을 마약이라고 불렀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이리라. 짠한 말이다.


나이 60이 다 된 남편은 그놈의 마약 때문에 오늘도 출근 한다. “잘 다녀오세요”라며 배웅하는 나도 마약을 못 끊는 건 피장파장이다. 우리는 가뭄에 콩 나듯 욜로했고 늘 파이어를 꿈 꾸며 살았지만 지금은 마약이 우릴 물고 늘어진다. 그놈의 마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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