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기억해
내게 언제의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면
바로 지금
날 알아보고 날 믿어주는
너와의 모든 지금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어
지나간 모든 순간들
— 재쓰비, 「너와의 모든 지금」
어제 친구를 만났다. 생일기념해서 동네에서.
오랜만에 봤지만 여전히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올해 내게 있었던 여러 이야기 —망한 연애와 배신당한 우정 그리고 그 속에서 받았던 상처들—을 나눴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마다 들었던, 내 마음을 덮어버리던 반응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나를 방어하며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근데 친구는 너무 여유롭고 너그럽게 아니라고 해줬다.
"그런 사람들이 문제고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순간 내 모든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이렇다 할 위로의 말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말 하나하나가 너무 따듯했다. 그렇지.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이런 거였는데 말이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가족여행을 했다. 근데 유난히 힘들고 짜증이 났다.
내가 한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
이상하리만큼 착하고 부지런한 엄마.
모든 게 싫었다.
아빠는 늙은 자신을 탓했다.
근데 난 그게 변명처럼 느껴져서 더 싫었다. 예전에도 내가 한 말은 기억 못 했는데.. 아빠 안엔 아빠가 너무 많아서 내가 들어갈 곳이 없다. 가족도.
자기 일을 잘하면서도 이내 숨기는 엄마도 싫었다. 자신감 없는 모습에 화가 났다.
왜 주눅 드는데?
섬세함은 고도의 콤플렉스에서 나온다고 한다. 내 결핍과 이상형도 그렇다.
난 늘 내가 최우선인 사람,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인게 중요했다.
둘에게는 내가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괜찮고 대단한 사람임을 늘 증명하며 살았다. 볼품없고 싶지 않으니까.
아빠는 내 중고등 시절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엄마는 뒤돌아보니 내가 커있었다고 했다. 당연하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내 10대 때 아빠는 퇴직 후 우울했고 마음에 병이 있었다. 퇴직 후 혼란스러워했고, 일을 더 할 수 없음과 나빠진 건강에 주변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시절 엄마는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학교를 다녔고 직장에 들어갔다. 내게는 둘 다 관심이 없었다. 첫째는 이미 대학생이라 집에 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로웠다. 아빠의 우울과 엄마의 사회생활로 내게 향한 관심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 시절의 기억이 흐릿하다. 그때의 나는 바깥에서 관심을 채웠던 것 같다.
'넌 T 같진 않았어. 뭔가 오히려 더 F인 나보다 생각은 더 감성적이고 감정적이고, 말이 좀 T 같았으려나? 약간 겉차속따!(겉은 차갑고 속은 따스운 사람)
전부터 그랬던 것 같아. 그때(중고딩 때)도 이런 mbti의 개념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더 잘 이해했을 거야 서로를'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F들의 감성을 더 이해해주지 못해서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해 지난 인연들에게'
'나도. T들을 더 받아줄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더라고'
이제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사이에서 나누는 따듯한 대화.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모르던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