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 그리고 우리가 얻은 교훈

(고래해답-2)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한진해운 파산의 원인

by 신미

2008년 9월, 미국 3위 투자은행 메릴린치와 4위 리먼브라더스가 같은 날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바로 그 전까지만 해도 내로라하는 글로벌 해운선사가 당시 내가 근무하던 조선소 앞에 줄을 서서 너도나도 자기 배를 지어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거품은 터졌고, 그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기본설계부에서는 "다시는 조선소가 갑(甲)이 되는 시기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떠돌았다. 울산 앞바다에 선사가 가져가지 않은 배 여러 척만 둥둥 떠 있었다.


2010년, 힘들면서도 기억에 남는 한 해였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불과 2년 뒤, 당시 세계 1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가 세계에서 가장 큰 18,000TEU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의향을 보내왔다. 그것도 10척을 기본으로 무려 20척이 옵션으로 붙은 초대형 계약 건이었다. 설계를 해보니 배의 길이만 약 400m, 폭이 59m 정도로 축구장 4개 크기만 하다고 생각했다(그 전까지는 14,000TEU가 가장 큰 컨테이너선이었다). 배의 가격(선가)은 일반적으로 1TEU에 1만불 정도하니, 1척당 1억 불이 넘고, 10척의 선가를 원화로 계산하면 2조 원에 이르는 계약이다(당시 금융위기 여파로 선가가 낮았던 시기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기본설계 담당자(Naval Architect)로 낙점되었다. 그러고 본격적인 야근이 시작되었다. 다른 선사로부터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문의사항(enquiry)이 하루가 멀다고 메일로 날아들었다(왜 그들이 세계 1위인지를 몸으로 아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 배를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에너지 효율성(Energy efficient), 개선된 환경 영향성(Environmentally improved)을 모두 갖춘 선박이라며, "Triple E"라고 불렀다.


2010년 가을 어느 날, 나는 계약을 놓친 이유에 대한 반성문을 썼다.

그 날도 야근 중이었다. 갑자기 영업부 담당자가 내려와서 머스크 사장이 거제의 한 조선소와 LOI(건조의향서)를 체결하러 이동 중이라는 첩보가 입수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약이 틀어진 이유에 대해서 경영진에게 보고해야하니 사유서를 써 달라고 했다. 늦은 시간까지 있지도 않은 이유를 짜내며 반성문을 썼다.

그리고 그 해 10월 둘 째가 태어났다. 다음 해 2월, 거제의 그 조선소는 영국 런던에서 머스크와 함께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약 5년 후 계약을 따낸 조선소에서 분식회계 사건이 터졌다.

소식을 듣자마자 그 때 썼던 반성문 생각이 났다(당시 경쟁 조선소가 막판에 아주 매력적인 선가를 제시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 둔 이후, 영국에서 직장을 얻어 근무하던 중이었다.

계약에는 실패했지만 'Triple E'의 기본설계를 담당한 이후, 2014년 퇴사할 때까지 초대형 컨테이너선 기본설계는 거의 도맡아 했다. 퇴사 전에는 현재 중국 COSCO Shipping 자회사인 CSCL의 2만TEU 컨테이너선 5척 계약을 따 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2016년 8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법정관리를 결정했고, 2017년 2월 17일 국내 1위 해운기업인 한진해운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파산부는 클릭 한 번의 전자결재로 한진해운의 파산을 선고했다. 그렇게 한진해운은 40년만(1977년 설립)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한진해운은 전 세계 70여 개 정기 항로를 운영하고 있었고, 선복량이 61만TEU로 한국 전체 물동량(105만TEU)의 약 60%를 차지하던 세계 7위의 글로벌 해운기업이었다.

한진해운이 파산하자마자 한국의 선복량은 약 46만 TEU로 절반 밑으로 떨어진다. 한진해운의 미국 롱비치 터미널 지분은 스위스 선사인 MSC와 현대상선(현 HMM)에 매각되었고, 아시아-미주 노선 등의 영업권을 다른 회사에 양도하는 등 한진해운의 거의 모든 자산이 헐값에 처분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쌓아온 무형의 글로벌 네트워크 자산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산업도 운임 하락 등으로 인해 불황이라는 악천후 속에서 항해하고 있었으나, 앞서 말했듯이 2010년 이후 머스크, CSCL과 같은 Top 10 선사들은 신조선 발주와 함께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사실 이 시기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운임을 더 낮추거나 심지어 덤핑 운임을 제공하는 등 선사들은 말 그대로 '치킨게임' 중이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 <(고래해답-X)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해운 얼라이언스>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수출입 비중이 GDP 대비 80%가 넘는, 한마디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국내 1위 글로벌 선사를 파산시킨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적 선사 부족으로 배를 구하지 못해 수출을 못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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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러자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글로벌 해운업 전체가 불황을 겪을만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해운업의 특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권단 책임과 함께 해운업 전반에 관한 전문성이 부족했던 경영진의 실책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한진해운의 용선(선박 임대) 비율이 매우 높았던 것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전체 컨테이너 선대에서 거의 80%가 용선으로 자사 선박 비율이 매우 낮아서 불황에도 높은 용선료 지불로 채산성이 나빠지며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아울러 한진해운 고(故) 조양호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최순실의 청탁을 무시하고, 최순실의 미르재단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현대상선(현 HMM)도 경영상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현대상선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세계 17위 현대상선은 지원하고, 세계 7위 한진해운은 방치한 것 역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다(출처: 임주영의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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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국정계획으로 '해운재건'을 내건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우리 해운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국적 선사 육성을 위해 2018년에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한다. 정부는 해운강국 재건을 위하여 친환경 설비를 갖춘 고효율 초대형 선박 발주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운항만이 비용을 줄이고 화물량을 높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출처: 임주영의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조선·해운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넘어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서는 글로벌 공급망 및 전략선대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최근 미국이 해양 지배력 회복을 위해 전면적인 해운·조선 부활 계획(Maritime Action Plan)을 공식화하고 조선산업 재건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 Too Big To Fail, TBTF)'라는 말이 있다.

"대마가 잡히면 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바둑에서 유래한 경제학 용어다. 우리나라에는 규모가 큰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도산할 경우, 사회나 고용 등의 측면에서 국가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너무 커서 정부가 반드시 구제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무조건 대기업은 살려야한다" 또는 "대기업이니까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규모의 경제가 질적인 경제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새롭고 잘 나가는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등 11지신이 모두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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