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1) 안도현 <연탄 한 장>
나는 2023년 가을 어느 일요일, 평소처럼 서점에 책 사냥을 하러갔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 맞은 편에 있는 켈리그라피 공방을 발견했다. 사실 2014년 초에 10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회사를 옮기기 전, 평소 켈리그라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몇 개월 간 배울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는 그런 배움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영국 회사의 채촉으로 1개월 조금 넘는 시간동안 워킹비자와 신변을 정리할 시간만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것이 아쉬웠던가?
잠시 공방만 둘러보고 이야기만 나눈다고 했던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학원비 결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리고, 2024년 초에 공방 선생님은 작년에 이어 올해 회원전을 개최할 예정인데 작품을 낼 의향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초보자인 나에게...
결국, 2024년 따스한 봄날 캘리그라피 회원전이 열렸고, 나의 작품도 걸렸다.
나의 첫 번째 작품의 글귀로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선택했다.
이유는 2022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에 울컥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극 중 한 회사의 부부 직원 중 해고된 여성들을 변론한 류재숙 변호사가 해고된 여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 전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낭독하는 장면이었다.
나도 나의 재능을 이용해서 어느 누군가에게 따스한 무언가가 되는 그런 날을 상상하면서...
아래에 첫 전시회에 출품했던 나의 작품과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 전문을 남긴다.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