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합임신과 나팔관 절제
그렇게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처음 겪는 유산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차가운 수술장 위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울었던 나에게
손을 잡아주던 간호사선생님은
다음에 꼭 임신 유지 해서 건강한 아이를
만날 거라 기도해 줬다.
바로 시험관 3차, 4차를 시도했고
결과는 실패였다.
하지만 나는 다시 또 도전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자 5통의 앰플이
주는 압박감이 있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임신소식은 나를 더 옥죄었다.
시험관 5차까지 연달아 시도했고
드디어 또 임신이 됐다.
우리 부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 주 한 주를 보냈다.
두줄, 피검사, 아기집, 심장소리까지 듣고
비로소 알리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강했을까, 아님 떠날 때를 알고
나를 기다려준 걸까.
임신 기간 내내 그렇게 피를 흘렸다.
기존에 맞던 주사 2대에서 1대가 추가 돼
하루에 총 3번의 주사를 내 배에 직접
놓고 버텼다.
그렇게 9주 차가 됐고 정말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병합임신이라고 했다.
새벽에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산부인과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나에게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었다.
배아를 두 개 넣어 이식을 했는데
자궁 내, 자궁 밖에 동시에 착상 돼
임신이 된 것이다.
하나는 배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 9주 차였고
하나는 나팔관에 자리 잡아 6주 차였다.
대학병원에서 확인한 나팔관 속 아이는
심장이 우렁차게 뛰고 있었다.
쌍둥이인 건가 하는 의미 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력했다.
결국 나는 아이를
품은 채 수술장에 들어갔다.
나팔관은 절제됐고 그렇게 하나는
떠나보내고 하나는 살리기로 했다.
전신마취 수술도 견뎌준 아이는
힘찬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다 견딜 수 있었다.
이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전신마취도, 진통제 없이 겪어야
하는 수술 이후의 고통도 다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임신은
어느덧 20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