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통틀어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살아가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생활소음이 불편한 아들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소리였다. 아들은 심심하면 오래된 디지털 피아노의 양쪽 다리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팔을 머리 위로 뻗어서는 제일 아래 건반부터 제일 위쪽 건반까지 88개의 음을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눌러 가며 귀를 기울였다. 앙 다문 아들의 입에서 비슷한 음역의 소리가 음-음-음- 하면서 새어 나왔다. 건반을 누르는 빠르기가 달라지면서 메이저 음과 마이너 음이 뒤섞여 그로테스크한 앙상블을 이루었는데 아들의 표정에는 <포레스트 검프>의 스마일이 딱 붙어 있었다.
그리하여 2018년 12월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개인레슨’으로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레슨비도 부담스러웠고, 태어난 지 3년 하고 3개월밖에 안된 아들이 ‘놀이’가 아닌 ‘학습’으로 피아노를 배운다는 게 엄마가 보기에도 아직은 일러도 너무 일렀다. 그래도 아들이 좋아하니 한번 물어나 보자고 아파트 단지 상가의 새로 생긴 피아노학원에 가보았다.
초등학교의 수업이 끝나는 1시부터 피아노학원의 수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아들이 피아노 소리를 많이 좋아하니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딱 30분씩만 수업을 해 줄 수 없겠냐고. 진도는 나가지 마시고 ‘도레미파솔라시도’나 알려 주시고 건반 누르고 피아노 소리 듣게나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원장님은 흔쾌히 허락을 하셨다.
아들은 매일같이 12시 30분만 되면 피아노학원에 가서 그랜드피아노에 앉아 도레미파솔라시도 건반을 누르고는 한 껏 상기되어 물개박수를 치다가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조막만 한 손으로 ‘나비야’를 쳤다. 이번엔 내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물개박수를 쳤다. 그럴 거면 그냥 엄마가 집에서 피아노 앞에서 같이 놀아주면 되지 뭐 하러 학원까지 보내느냐고 할 텐데, 이런 류의 아이들의 욕구는 전문가들이 더 잘 알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피아노학원의 원장님은 아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봄이 되어 병설유치원에 입학하고는 하원하는 1시에 맞춰 피아노학원으로 갔다. 다른 친구들은 놀이터로 직행하는데 아들은 자연스럽게 피아노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피아노 소리가 좋은 아들이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봄의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다 보니 피아노학원의 원생들은 점점 늘어갔다. 여름을 지나면서 원장님 혼자서 수업이 안되니 보조선생님이 새로 왔다. 학원이 씨끌벅적하고 소란스러워지자 아들은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그만 다니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 혼자 배우면 안 되겠냐며 나를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아들의 피아노 선생님을 만난 건 한 블로그였다. <안단테 피아노>
여기저기 블로그를 뒤지다가 개인레슨을 하는 <안단테 피아노>를 찾았다.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시한다는 선생님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뭐든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배운다면 세상에 못 배울게 뭐가 있을까’ 생각이 미치자 블로그 하단에 적힌 번호로 무작정 메시지를 남겼다. 미취학 아동은 레슨을 안 한다고 적혀있었지만 무작정. 2019년의 마지막 금요일에 아들을 만나러 우리 집으로 온 안단테 선생님은 영혼까지 우아한 사람이었다. 아들이 첫눈에 반했다는 걸 엄마는 직감했다.
2020년 1월 3일부터 아들은 일주일에 2번씩 선생님을 만났다. ‘코로나19’로 할 수 없는 것들만 수두룩했던 그 시절, 피아노 수업은 아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피아노 의자에 선생님과 엉덩이를 붙이고 나란히 앉아 손가락을 주고받으며 소리를 만들어 내던 한 시간은 아들에게 일주일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피아노 의자에 올라앉은 아들의 꽁무니에 16분 음표의 꼬랑지가 살랑거렸다.
아들이 음악적으로 점점 성장하면서, 오래된 디지털 피아노에 이별을 고하고는 중고로 스무 살 된 붉은색의 업라이트 피아노를 새로 장만했다. 보기만 해도 고상하고 품위 있고 아름다웠다. 피아노 소리는 점점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막귀인 나에게도 아들의 피아노 소리가 연주로 들리기 시작했다. 조성진, 임윤찬 보다 멋있다는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당신에게만 살짝 했더니 고슴도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23년 7월 28일을 마지막 수업으로 안단테 선생님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선생님이 미국으로 떠난 동안 피아노 선생님이 2번이나 바뀌었으나 아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첫 번째 선생님은 ‘성과주의자’였고, 두 번째 선생님은 ‘완벽주의자’였다. 아들만큼 나도 안단테 선생님이 그리웠다. 피아노를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아들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삐뽀삐뽀! 엄마의 편도체에 위험감지신호가 울렸다.
안단테 선생님이 돌아왔다!
2025년 3월 7일, 안단테 선생님과의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머리 위에 행복한 음표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피아노 치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몸이 반응해 리듬을 탄다. 피아노 숙제를 하면서도 수다스러워졌다. 체르니는 공부하는 느낌이라 재미가 없지만 브루크뮐러는 아름답고 감성적이라 피아노를 칠 때 기분도 좋고 재밌다고 말이다. 아들은 이제 다시 피아노가 즐겁다. 보는 나도 즐겁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들에게 예술을 가르치는 이유는 창의력, 감정 표현, 전인적 성장 등 다양한 발달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감정 표현과 자기 이해, 창의성 개발,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거창한 것들 다 모르겠고, 그냥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이, 사진을 찍는 순간이, 영화를 넋 놓고 보는 시간들이 행복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디 악기조율사나 피아니스트는 되지 않기를 바란다.
광대한 너의 삶에서 네가 즐거운 것을 찾아라.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