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라"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지인과 통화를 했다. 그가 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는 조카가 요즘 부업으로 혐오 콘텐츠를 만들어 돈을 번다는 것이다. 젠더 갈등을 자극하는 영상, 세대 간 대립을 부추기는 게시물—조카는 자신이 믿지도 않는 신념을 콘텐츠로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고 광고 수익을 챙긴다. 지인은 혐오가 돈벌이 수단이 된 세태와, 그 대열에 합류한 조카를 한탄했다.
요즘 세상은 온통 분노로 가득하다. 노인 혐오, 종교 혐오, 여성 혐오, 지역 혐오….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끝없이 오간다. 심각한 건, 이 혐오가 이제 돈이 되는 구조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혐오를 자극하면 클릭이 늘고, 클릭이 늘면 광고 수익이 오른다. 이른바 '혐오를 파먹고 사는 사람들'의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기보다, "무엇이 돈이 되는가"에 따라 편을 고른다. 오늘은 젠더 갈등, 내일은 세대 갈등—이들은 혐오의 원인을 믿지 않으면서도 혐오의 편에 선다. 진심이 아니라 시장 논리로 만든 주장이다. 이들은 분노를 조율해 조회수와 클릭을 만들어낸다. 감정이 강할수록 콘텐츠는 더 많이 퍼진다.
이 현상은 인간 본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세 가지 우상, 즉 동굴의 우상·시장의 우상·극장의 우상이 오늘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부활했기 때문이다.
동굴의 우상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과 관점 안에 갇히는 경향을 뜻한다. 지금의 소셜 미디어는 그 '동굴'을 완벽히 구현했다. 알고리즘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듣고 싶은 말만 들려준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현실을 살며, 타인의 생각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시장의 우상은 언어의 혼란과 감정적 선동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미디어가 바로 그 '시장'이다. 누구나 목소리를 높이지만, 대화 대신 구호가 오간다. 논리보다 말의 톤이, 사실보다 분노의 크기가 더 중요해졌다. 시장은 진실을 팔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분노의 감정이 상품이 되어 유통된다.
그리고 극장의 우상. 이것은 가장 현대적인 우상이다. 사람들이 진리보다 각본화된 믿음을 따를 때 생긴다. 정치인과 미디어는 특정한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사람들은 배우처럼 정해진 대사를 외운다. "분노하라", "저들은 적이다", "우리만 옳다." 이런 구호는 현실의 복잡함을 지우고,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편집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무대 위의 사람을 따르고 흉내 낸다.
이 세 가지 우상이 합쳐질 때 혐오는 하나의 체계적 산업이 된다. 동굴의 편견이 시장의 언어를 통해 확대되고, 극장의 각본이 그것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정치인은 그 에너지를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한다. 정치가 갈등을 관리하는 예술이라면, 오늘의 정치인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술자가 되었다. 이 구조가 계속되면 사회는 냉소로 가득 차고, 공동체의 유대는 무너져 내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혐오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혐오에 길을 내주지 않는 법은 배워야 한다. 혐오가 줄어들수록 공동체의 유대감은 회복된다.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분열된 사회에서는 어떤 위기도 극복하기 어렵다.
먼저, 개인의 실천이 필요하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봤을 때 즉각 반응하지 말고, "이건 나를 어떤 감정으로 몰아가려는가?"를 물어야 한다. 분노보다 사유가 길면, 혐오의 확산은 늦춰진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플랫폼 기업은 혐오 확산 알고리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극단적 콘텐츠를 우선 노출하는 추천 시스템을 규제하고,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혐오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 자체를 차단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의무화하고,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과정을 강화해야 한다.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혐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민사회의 압력도 중요하다. 혐오로 돈을 버는 기업과 정치인에 대한 조직적 보이콧, 신뢰할 수 있는 언론에 대한 지원과 구독, 혐오 방지 정책을 요구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개인의 태도 변화와 제도적 개선, 둘 다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혐오의 각본을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그리고 혐오가 돈이 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혐오의 어둠을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