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눈을 멀게 하는 '감동 연출극'

by 시온

기업의 생존 공식은 명확하다. 매출을 올리고 이익을 남기는 것. 하지만 현실 속 많은 회사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진짜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CEO 주변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감동을 연출하는 사람이 더 빨리 승진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회사는 본질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언론인들 사이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모 회사 홍보실장이 벌인 완벽한 ‘감동 연출극’ 이야기다.

그는 CEO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사장님, 언론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순진한 CEO는 그의 말을 믿었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기자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언뜻 보면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게 계산된 각본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기 인사 발표 한 달쯤 전, 홍보실장은 평소처럼 CEO와 함께 언론사 간부와 술자리에 앉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는 연기를 시작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옆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꺼냈다.

"형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옆방에서 좀 쉬어야겠습니다. 우리 사장님 잘 부탁드려요."

미리 짜고 친 대본이었다. 언론사 간부는 즉시 그 문자를 CEO에게 보여줬다. "사장님, 홍보실장을 보세요. 사장님을 위해 이렇게까지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매일 우리 같은 기자들과 부딪히면서도 회사를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고 있어요."

CEO는 그 자리에서 감동했다. "저 친구가 나를 위해 이런 마음으로?" 며칠 후 정기 인사에서 홍보실장은 예상대로 승진했다. 업계에서는 "정말 눈물겨운 연출이었다"는 비아냥 섞인 소문이 돌았다.

이 사건이 단순한 촌극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이런 일이 수많은 조직에서 일상처럼 반복된다는 점이다. 실제 업무 성과보다 CEO 앞에서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느냐가 승진을 결정한다. 핵심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회장실 문고리를 많이 잡는 것이 더 빠른 출세 코스가 되는 회사들. 전문성은 구석으로 밀려나고, 아부와 감동 연출이 조직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연출극이 실제로 CEO들에게 먹힌다는 사실이다. 분명 언론 관계나 대외 활동은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닌 계산된 연극으로 변질되는 순간, 회사 전체가 허상에 빠진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건, CEO가 그 연출을 진짜 헌신으로 착각해버린다는 점이다.

결국 핵심은 기업의 리더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 앞에서 보여지는 충성스러운 모습이 정말 조직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계산된 쇼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별력을 잃는 순간, 회사는 '연기 잘하는 사람들의 무대'로 전락한다. 그 결과는 묵묵히 일하는 진짜 일꾼들의 좌절과 조직 전체의 몰락이다.

감동적인 연출은 순간적으로 CEO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쇼맨십이 회사를 살리지는 못한다. 기업의 진짜 미래는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묵묵히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손에서 나온다. 중요한 것은 CEO가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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