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세상을 바꾼 발견들 중 상당수가 정작 그 시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부에 있던 이들의 손에서 나온 것도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제본소 견습생이었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런던 왕립연구소가 일반인에게도 공개 강연을 열었고,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가 그의 열정을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와트도 비슷하다. 그는 대학 교수가 아니라 실험 기구를 수리하는 기술자였다. 당시 과학계의 '정통 경로’ 밖에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의 비효율성에 의문을 품었고, 그 호기심으로 개량된 증기기관을 만들어냈다. 만약 그가 "자격이 없다"며 배제되었다면, 산업혁명은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간단하다. 그들이 살던 사회에서는 기회가 비교적 열려 있었다는 것. 누가 질문했느냐보다 무엇을 질문했느냐가 더 중요했다는 것. 과학적 '순혈주의'가 그들을 가로막지 않았다는 것. 그런 환경이 그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했다.
실제로 과학사를 보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만으로 구성된 폐쇄적인 집단에서는 혁신이 더디게 일어났다. 오히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교류할 때, 예상치 못한 돌파구가 열리곤 했다. 과학은 순수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열린 교류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근대 이후 과학의 발전은 서양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을까? 사실 오랫동안 동양이 문명의 앞선 위치에 있었다.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 같은 중요한 발명들은 모두 동양에서 나왔다. 하지만 점차 중앙집권적 체제가 강화되면서 지식의 흐름이 막히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은 '천한 일'로 여겨졌고, 실용적 지식보다 유학적 교양이 우선되었다. 지식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고, 자유로운 탐구는 설 자리를 잃었다.
반면 서양은 달랐다. 중세 이후 대학, 길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교적 개방된 지식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누구나 공개 강연을 듣고,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고, 실험을 할 기회는 있었다. 과학이 권력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결국 동서양의 차이는 '개방과 교류'냐, '위계와 독점'이냐의 차이였다. 이 차이가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격차로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비슷한 문제 앞에 서 있다. AI 시대에 거대 기업들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알고리즘을 감추고, 논문마저 유료화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영업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지식이 다시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순혈주의가 등장하는 셈이다.
패러데이가 왕립연구소 문턱을 넘지 못했다면, 전자기학의 발전은 지연되었을 것이다. 와트가 배제되었다면, 효율적인 증기기관의 등장도 늦어졌을 것이다. 과학의 역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 질문들이 만들어온 측면이 분명히 있다.
AI가 정말 인류를 위한 도구가 되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문을 열고 있는가, 닫고 있는가? 오픈소스, 데이터 공유, 투명한 알고리즘 공개는 선택이 아니라 과학 발전의 기본 조건이 아닐까?
과학은 닫힌 문 안에서 자라지 않는다. 열린 문, 평등한 기회,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자유 위에서 자란다. 동서양의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