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by 무지


내가 맞춰 놓은 알람으로 일어난 것에 심술이 난 모순적인 아침. 늘 하던 대로 물을 한 잔 마신 뒤, 아침의 시작을 방해하는 커튼을 걷어낸다. 눈이 찡그려질 수밖에 없는 새 하루의 햇살은 내 표정과 상반되게, 나의 심술을 거둬 가는 맑은 웃음으로 나의 상쾌한 시작을 도와준다.


그에 상응하듯, 나는 늘 7시 즈음 내가 키우는 식물에게 물을 준다. 식물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친구 이사를 도와주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건네받았을 뿐. 처음에는 ‘신경 써야 할 게 또 늘었다’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죽게 둬서는 안 되겠다는 인도주의적 생각은 아직까지 이 친구에게 물을 주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꽤나 힘이 드는 일이다. 그것에게 해줘야 할 것들은 이미 친구에게 들었기에, 인터넷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 물론 이름을 알지 못해 검색이 힘들지도 모른다 —. 고작 물을 주고, 햇빛이 잘 드는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 끝이었다. 간단한 일이라도, 손을 먼저 건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 행위에 일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면, 다가가는 것은 언제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거리가 고작 1m도 안 되는 거리일지라도 말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관심이 없는 존재에게 큰 용기로 다가갈 수 있다니.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니.


매일 거울에서 만나는 자신의 변화는 눈치채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매일 바라보는 그것의 자그마한 변화는 알아챌 수가 없었다. 분명 조금씩 자라고 있을 텐데. 늘 변함없어 보이는 모습은, 내겐 그저 질문에 대답 없는 학생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물을 줬다. 그것의 자리를 언제나 지켜주었다. 말했던 것처럼, 자주 보는 것의 변화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또한 늘 바라보며 커져 가는 나의 마음 또한, 나도 알 길이 없었다.


그땐 알지 못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것에게 물을 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리를 옮겨주고, 가끔 멍하니 바라봐 주는 모든 행위는 분명 ‘대화’였고, 우리만의 소통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대답이 없어도 꾸준히 말을 걸었다. 가끔은 답을 바랐지만, 그것은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사실, 대답을 바라고, 대답이 없는 그것에게 계속 질문을 건네는 나는, 그것을 사랑했을 것이다. 꾸준히 대화를 하는 것만이 나의 사랑의 방법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끝없는 질문에 실증이라도 난 걸까. 겨울의 한기와 봄의 향기가 공존하는 얄미운 계절에, 그것은 갑작스레 시들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먼저 시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먼저 시든 것은 너였다. 시들기 시작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더 잘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는 법 따윈 알지 못했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물을 주고, 일정량의 햇빛을 건네는 것뿐. 그렇게 나는 계속 질문을 던졌다.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그것의 존속을 바랄 뿐.


어느 날은 시든 것처럼 보이고, 어느 날은 괜찮기를 반복한 끝에 너는 결국 꽃을 피웠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결국 너는 피어났다. 너의 꽃을 보고 나니, 그제야 알겠다. 내가 매일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이 사실은 ‘대화’였다는 것을. 나의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라, 네가 묵묵히 들어주고 있던 우리의 대화였다는 것을. 대화는 꼭 말을 주고받는 일만이 아니다. 어떤 대화는 기다림이고, 어떤 대화는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이다. 우리 대화의 끝은 ‘꽃’이라는 탄생이었다. 그리고 아마, 새로운 대화의 시작일지도.



ps. 현대의 우리는 너무 쉽게 침묵하고, 너무 빨리 단절된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대화를 멈춘다. 그러나 대화는 언제나 옳다. 대화는 이해를 낳고, 이해는 변화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진화는 결국 ‘대화’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제 안다. 시든 듯 보이던 너와의 시간,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꽃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대화의 또 다른 형태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너에게 묻는다. 대답이 없어도, 언젠가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날 그 날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