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
계절이 바뀔 때쯤, 한 해에 자주 오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봄의 산뜻한 내음과 여름의 푸른 바다가 함께 몰려온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가을이 가진 색색의 빛깔이 엉켜 있다. 가을의 생(生)과 겨울의 사(死)가 공존하는,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그런 순간이 찾아올 즈음,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원래 해오던 것과 다른 일상을 살아본다.
분명 늘 일어나는 시간에 눈을 떴지만, 블라인드를 올리자 다른 태양이 나를 반긴다. 어느 태양은 환한 미소로 내게 인사하고, 어느 태양은 부끄러운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나는 어떤 태양이든 그리 상관은 없었다. 태양이 어디에 자리 잡든 어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그리고선 배낭에 컵라면과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보온병을 챙기고, 먼지 쌓인 등산화를 꺼내 신는다.
늘 출근길에 지나치는 북악산을, 그날은 목적지로 삼은 채 걷기 시작한다. 자주 보던 곳이기에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면 늘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어찌 보면 산은 사람 같다. 겉과 속이 다를뿐더러,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나는 그 존재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산을 오르며 다양한 생각을 하곤 한다. 솟아 있는 나무들의 이름에 관해. 거칠음과 매끄러움, 그리고 세월의 관계에 대해. 오르는 일과 내려가는 일의 경중(輕重)에 관해. 도시의 소음과 자연의 지저귐의 차이에 대해. 잡념에 몰두한다면 그것은 잡념일까, 사색일까 하는 것들. 이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나는 아마 사랑하기에, 걸음을 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숨이 차오르면 나는 잠시 멈춰서 하늘을 바라본다. 뒤에서 나의 멈춤을 지적하는 존재도, 나아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존재도 이곳에는 없기에, 나는 마음 편히 쉬어감을 택한다. 빼곡히 하늘을 메운 나뭇가지 사이로 태양의 일렁임이 새어 나온다. 그 일렁임의 빛을 나는 아마 사랑하기에, 그 순간조차 눈에 담으려 하늘과 눈맞춤을 시작했을 것이다.
걸음과 쉼의 연속을 반복하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 있다. 산이라는 숲을 뚫고 도착한 곳에는 또 다른 숲이 펼쳐진다. 구름 사이사이로 우거진 빌딩숲이 보인다. 그곳에는 수많은 인간들의 생이 담겨 있지만, 내가 보는 시퀀스에는 죽음의 순간만이 담겨 있다. 내가 그곳에서 왔다는 생각에 몸서리치게 소름이 돋는다. 분명 그곳에서 나도 ‘생’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분명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이곳에서 보니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계절을 가리는 숲에 갇혀,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봄의 내음과 여름의 바다, 여름의 태양과 가을의 빛깔, 가을의 생과 겨울의 사가 공존하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나의 생을 인정받기 위해, 나의 사를 부정하기 위해. 나는 계절을 가리는 것과 공존하며, 계절을 보기 위해 발버둥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