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연애학

30대 소개팅

by 김가을

토요일 저녁 여덟 시,

바닥에 고인 구정물을 피해 걸었다. 아직 소란스러운 번화가를 지나치며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가까워지고 싶었는데.


오늘 소개팅 말이다. 잘 되지 않았다.

첫 만남부터 모아둔 돈과 소득 등을 따져 묻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계산서를 들여다보며, “생각보다 비싸네요”라고 말했을 때,

"그러게요" 덧붙일 말이 없어 나는 미소로 넘겼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대화는, 아니 면접은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면접비 대신 인사를 받고 씁쓸하게 땅을 보며 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말이라 차를 멀리 댈 수밖에 없었다.

땅만 보고 걷는 것도 지겨워 시끄러운 거리를 조목조목 뜯어본다.

거리의 불빛이 밝게 번지고 토요일 저녁 번화가는 사람이 많았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얼굴이 붉어져 싸우는 사람들.

요즘은 인형 뽑기가 유행이라던데 정말 인형을 뽑는 연인도 많이 보였다.

예전 추억이 떠올라 흐뭇하게 몰래 혼자 웃음이 나왔다.


이제 그렇게 만나지는 못하는구나.

이십 대에 했던 초라하지만 흐뭇했던 연애들.

그때는 패밀리 레스토랑 메뉴 이름도 생소했는데,

꼴에 이제는 노포까지 찾아다니며 미식가인 척을 한다.

반면 이상하게도 연애는 점점 어려워진다.


예전엔 '좋아해서' 약속을 잡고, 전화를 하고, 질투도 했었다.

나 말고 친구를 만난다면 괜히 서운했고 그 친구가 이성이라면 화도 났다.

질투 많던 찌질한 나를 얼른 졸업하고 싶었다.


지금은 질투가 잘 나지 않는다. 놀라우리만치.

"그래 그럼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

성숙 해진 건가 이제 그만큼 안 좋아하는 건가.


하지만 소개로 만날 수밖에 없는 나이에,

소개로 만난 지 며칠 만에 질투를 할 만큼 내 마음은 깊어지지가 않는다.

나도 '오늘부터 사귀자' 관계정립을 마친 날부터 사랑에 흠뻑 젖어버리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쉽고 씁쓸하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 중에 같이 인형을 뽑아 줄 사람이 있을까.

그저 음식에 대해 심심한 이야기를 나누고 취미나 좋아하는 영화를 서로 공유하며 천천히 알아가고 싶다.

두 번, 세 번 만나고 그와의 대화가 즐거워질 때면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천천히 젖어들고 싶다.


오늘 소개팅을 하며 우리가 알게 된 건, 서로의 직업. 출퇴근 시간. 소득.

모닥불보다는 가스레인지 같은 사랑 흉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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