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창을 열면 제법 겨울 냄새가 난다. 나는 계절의 냄새를 좋아하는데 마음 같아선 집 밖에 나가
이 차가운 냄새로 내 허파를 가득 채우고 싶다.
새벽에 문을 열고 나가기엔 꽤 게으른 탓에 상상으로나마 문을 열고 나가본다.
대충 겉옷을 집히는 대로 주워 입고, 턱 밑까지 지퍼를 꽉 채운 후에 구멍 뚫린 슬리퍼를 신고 문 밖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는 이 시간에 아무도 타지 않아 내 자가용이 된 듯하여 기분이 꽤나 좋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서는 마음대로 뻗친 머리칼을 나름 정돈하여 혹시 마주칠 사람에 대한 대비.
1층 얼룩덜룩 돌바닥을 지나면 자동문이 제공하는 소박한 출정식. 기분 좋은 마찰음을 내며 열린다.
캄캄하고 가로등은 노랗고 그 중간 즈음은 파랗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어볼까, 찬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부비고 지나간다.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목이 뻐근하니 내친김에 뒤로 쭉 젖힌다. 으그그극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단지 밖을 나선다.
매일 아침 그렇게 나서기 싫던 출근 길이 새벽에 혼자 나오니 모두 가라앉아 숨소리도 없는 것이 생경하다.
이제 백수가 된 나만 깨어있다 이것들아. 찌질한 독백을 속으로만 작게 외치고 나니 개운하고 편안하다.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일을 하고 돈을 벌었는데.
오히려 일을 하는 동안엔 올 수 없는 공간이라니 참 이상해.
바람막이가 얇은 탓인지 제법 찬바람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른 되돌아가야지.
눈을 뜨고 상상뿐인 외출을 마친다. 실감 나게 즐기기 위해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기 전 마지막 겨울 냄새를 듬뿍 마시고, 마저 닫아버린다.
백수의 상상외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