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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20. 2023

사실은 누구보다 잘하고 싶으니, 다정하게 지켜봐 주세요

시험이 쉽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에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치르는 수학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적이 있다. 수학 과외(빨간 회초리가 인상적인 선생님의)를 시작한 시점으로 추정되는데, 단순한 계산으로 이루어진 문제들은 생각을 크게 요하지 않았다. 이 당시의 내가 얼마나 거드름을 피웠는지, 문제를 다 풀고 볼펜을 아직 놓지 못한 주변 친구들을 보며 '아직도 다 못 풀었네?' 생각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며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응용해야 하는 과목, 특히 수학의 경우 기초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내 가방은 무거웠다. 사물함에 넣어 두면 분실할까 봐 걱정되어 수업에 필요한 모든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 많은 책들을 매일 들고 다니면서, 집에서 펼쳐본 일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벽돌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지름길은 없다. 첫 단부터 차례대로 쌓아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데에는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인내심이 또한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당장의 성적을 위해,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았을 때의 성취감이나 타인의 칭찬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위해 인내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보상이 금세 주어지지는 않지만, 계획한 장래를 안전하게 이루어가기 위해 인내할 수 있다. 당시의 나는 인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공부를 하고 얻게 될 무언가보다 즉시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데 주어진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친구들과 뛰어놀거나, 게임을 하는 데는 인내심이 별다르게 요구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꿍이 시험지에 적어 놓은 답을 몇 개 베낀 적이 있다. 곁눈질로 몰래 본다고는 했지만, 짝꿍은 나의 노골적인 시선을 아무래도 느꼈을 것이다. 이때의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성적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높은 점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예습이나 복습은 하지 않았고, 친구라고는 하지만 친하지 않은, 낯선 이들이 가득한 교실은 예민한 내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수업 시간을 대체로 공상하며 보냈다. 시험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들이 많았고, 풀려는 시도보다는 몇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나는 방학 숙제를 몰아서 하는 편이었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밀린 숙제를 해나가던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떠오른다. 하루는 안방에서 간이 책상을 펴고 가만히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에 동요와 관련된 질문을 해결해가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가 몇몇 동요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크게 혼을 냈다. 다그치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당황하며 동요를 기억해 내기 위해 애를 썼다. 엄마는 "다시 불러봐!"를 반복했고, 부를수록 혼이 나는 상황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다. 


상담 대학원에 들어가서 웩슬러 성인지능검사(K-WAIS4)를 한 적이 있다. 상담 선생님은 "지능이 더 높게 나올 수 있는데, 동기가 부족해요"라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틀린 답을 말해 다시 맞춰보도록 선생님이 안내했는데, 내가 쉽게 포기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거듭 시도하며 문제를 맞히게 되었을 때보다 문제를 계속 틀리고 있는 그 순간이 당장에 싫었다. 나의 못난 면을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았고, 답을 맞힐 거라는 기대도 없으니, 서둘러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상담 수련 과정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내가 속한 학회에서는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나는 대학상담센터에서 수련을 했다. 사설 상담센터와는 다르게 수련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보다 안정적으로 상담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함께 수련받는 동료 선생님들과 상담 시연을 하며 슈퍼바이저에게 교육받는 날이었다. 슈퍼바이저는 나를 본보기로 상담자로서 적절한 반응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언급하는 수정사항이 즉각적으로 반영될 것을 요구했는데, 시연을 하는 과정에서 수정사항이 반영되지 않거나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면 "다시!"라는 말이 반복됐다. 포기하고 싶었으나, 자의로 멈출 수 없는 교육 상황에서 나는 극도의 수치심을 경험했다. 


삶의 의욕이 적어, 몇 개 없는 내면의 촛불이 수치심이라는 입김으로 일렁이는 듯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상담자로서 부족한 반응을 보완하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는 고민을 가진 내담자를 다양하게 소화하며, 상담자로서 내 반응이 어땠는지 의견을 들려주었다. 이 과정을 또한 녹음하여 다시 들어보는 노력도 기울였다. 슈퍼바이저는 상담 시연을 다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동료 선생님과 별도로 연습하며 자연스럽고 충분하다는 그의 말에 안도감을 느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로 인해 과업을 회피하는 상황은 결국 잘 해내고 싶은 욕구의 반영이다.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 놓이거나, 그런 느낌을 받을 때면 다급히 포기했다. 모르기 때문에 알아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거지만, 모른다는 자체에 초점을 맞췄던 나는 알지 못하는 내가 무능하게 느껴졌다. 공부하지 않기 위해 오지 않는 친구들을 애써 기다리기도 했고, 지루한 놀이나 게임을 지속한 적도 많았다. 한 단씩 쌓아 올리기에는 아직 쌓인 게 없는 내가 그저 부끄럽고 못마땅했다.


내게는 서투른 나를 지켜보며 응원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어느 인부의 짐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책가방을 함께 열며, '오늘은 어떤 공부를 해볼까?' 물어봐 줄 어른이 필요했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문제에서 재촉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물어봐 줄, 무심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는 다정한 가족이 내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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