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환자의 마지막 숨
| 이거 우리 어들 피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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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이유로 브로카 실어증(운동 언어 상실: 타인의 말을 잘 이해하나,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어려움)을 앓고 계시는 환자가 출근 후 라운딩을 도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마구 휘저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구한 종이와 펜으로 무언가 잔뜩 적은 구겨진 종이 조각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이제 막 한글을 깨친 유치원생이 알림장에 써놓은 듯 삐뚤빼뚤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드님께 전해드릴게요. 뭐 더 말씀하실 건 없으세요?"
"..."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녀는 손으로 엑스를 그으며 얼굴을 양 옆으로 흔들었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톡톡 치며 엄지손가락만 세워 '최고'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40대 중반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생김새를 가졌다.
얼굴에 주름 하나 없고, 굉장히 왜소해서 겉모습만으로 판단한다면 소아청소년과에 보내져도 괜찮을 정도였다. 손목은 떨어진 나뭇가지 마냥 가늘었다.
가끔, 말썽을 부려도 그녀가 배시시 웃는 것을 보면 화조차 낼 수 없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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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생일을 맞이하면, 케이크에 나이만큼 초를 꽂아 입으로 불어서 끄고, 소원을 비는 행위를 해봤거나, 축하해 주는 사람의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생일 초를 끌만큼의 숨을 내뱉는 건 너무 벅찬 일 일수도 있다.
호흡이 힘든 환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10km 마라톤을 쉬지 않고 빠른 페이스로 달린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힘들고, 숨 쉬는 행위 자체가 고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런 환자를 많이 봐왔던 나는 언젠가 내가 죽게 된다면, 숨만큼은 내 의지대로 쉬다가 눈을 감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가끔씩, 불안에 잠식되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특히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환자의 힘겨웠던 마지막 숨결은 내 가슴에 깊게 들어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함께 숨 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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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출벨이 울렸다. 호출벨 수신기의 모니터를 보았다.
역시나 내가 돌보는 환자의 침상이었다. 약 8-9시간가량의 근무의 절반에도 못 왔는데 쉴 새 없이 울리는 호출벨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리는 것만 같았다.
전화기로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할 수 없는 그녀이기에 호출벨이 울리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싶어 달려가는 것을 반복했다.
호출벨의 수신기는 병동의 다른 선생님들에게까지 보이도록 곳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빨리 달려가지 않으면 다른 선생님이 와계시는 미안한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그녀가 콜벨을 누르는 이유는 늘 간단하고, 어디가 불편해서 간호사를 호출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의 아들 사진을 보여주고 싶을 때,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을 때, 전화를 걸어 말을 하지 못하는 본인의 목소리를 간호사가 대신 내주고,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등 급하게 뛰어갈 이유가 없는 경우가 90% 이상 일 듯했다.
그 환자를 담당하는 동안, 나는 근무만 하면서 걸음수를 25000보를 넘게 찍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우울해질 틈도 없이 지쳐 잠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시시 웃는 그녀의 표정이 오전 내내 어두웠다. 호출벨도 누르지 않았다.
글로 써서 의견을 표현하려고 내 주머니의 네임펜을 슬쩍 빼가지도 않았다.(빼앗긴 네임펜만 해도 한 박스일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종이와 네임펜을 건네며 물어봤다.
"어디가 불편해요?"
'아들이 영락도 안 받고, 사진도 안 찍어 보내 저.'
아직 17살 밖에 되지 않았던 아들이 엄마의 연락을 점점 안 받기 시작한 것이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닐 테고, 사춘기가 찾아와 병원에서 하루 종일 아들만 찾는 엄마가 조금은 성가셨고,
'또 별일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라는 것을 몰랐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도와달라며 준 그녀의 핸드폰 창에는 아들에게 건 발신 전화가 35통이 찍혀있었다. 그녀 다웠다. 약 1분 정도 되는 통화연결음을 끝까지, 35번을 다 들었을 것이다. 정작 전화를 받아도 한마디 말도 못 하지만 말이다.
수많은 전화에도 문자 한 통 주질 않는 아들이 걱정되어 온종일 좌불안석인 그녀의 피부가 하얗게 질려 보였다. 말을 하지 못해도,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도, 가끔은 막무가내여도, 아들에게 있어선 가장 똑똑한 엄마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애가 탔을 것이다.
"제가 보호자분께 전화드려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나의 오른손을 잡았다. 산소가 몸 구석구석 닿지 못해 손이 얼음장 같았다.
보호자, 17살이 감당하기엔 무거운 세 글자라고 느꼈다.
얼마 전,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보호자' 로서 갔을 때 갑자기 솟아오르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고 느꼈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넘은 내가 한 달에 한번 꼴로 정신과를 방문할 때면,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해 나의 언니가 보호자로서 함께 가준다. 보호자가 느껴야 할 부담감과 보호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크게 느끼는 나로서는 17살에 보호자라는 호칭으로 불려야 하는 그녀의 아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었는지, 단번에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받자마자 그가 내뱉은 말은 전화의 인사말인 '여보세요'가 아니었다.
"우리 엄마 상태가 안 좋아요?"
그렇다. 그녀의 아들은 지쳐있었다. 일부러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마도 학교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영상통화를 걸어대는 아픈 엄마에게 심통이 난 듯했다.
"ㅇㅇㅇㅇ 병원 ㅇㅇ병동이고요, 다름이 아니라 아드님께서 연락이 안 돼서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셔서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니에요. 그런 거. 아들이랑 통화했고, 시험기간이니까 연락 좀 그만하라고 전해주세요."
깊은 한숨을 쉬며 받은 그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있었다. 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전화흘 끊어버렸다. 순식간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안 그래도 일을 하며 아픈 환자들과, 보호자와, 타 의료진과 날 선 대화를 하게 되는데, 보호자의 짜증을 고스란히 느끼며 환자분께는 어떻게 전해드릴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난처했고, 피곤했다.
곧 퇴근하는 나에게 17살 보호자는 큰 숙제를 안겨주었다.
하루 종일 본인만 떠올리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그만하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입 안에서 맴돌았다. 곧 퇴근 시간도 다가왔기 때문에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아들의 일방적인 할 말을 전하는 집배원이 되어야 했다.
"환자분, 아드님이랑 연락했고요.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요즘 시험기간이라 공부할 것도 많고 해서 바쁜가 봐요. 연락 주실 때까지 걱정 말고 쉬고 계시래요."
"..."
침묵 속에서 그녀는 할 말을 글로 써서 보여주거나, 의사를 표현하는 그 어떠한 몸짓도 하지 않았다. 나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정말 연락했어요? 우리 아들이 그렇게 말했어요?'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거짓말을 썩 잘하지 않는 나는 눈을 피했다.
"요즘 친구들이 공부 열심히 하잖아요. 아드님도 공부하느라 예민해지셨나 봐요."
이번에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그대로 위. 아래로 끄덕였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인어공주에게 달콤한 거짓말을 속삭이는 마녀가 된 것 같았다. 없던 말까지 지어서 전달해주어야 하는 그 자리를 어서 피하고 싶었다.
"곧 연락하실 테니까 너무 걱정 마시어요. 푹 주무시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환자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누웠다. 눈물을 참고 있었다. 모른척했다. 내 감정의 무게를 버텨가며 일하기도 벅찼다. 다른 이의 아픈 마음까지 품을 틈이 없었다. 그저 감정을 뺀 로봇이 되어 다음번 간호사에게 이러한 일들을 인계하고 퇴근했다.
다음 날 저녁에 출근하니 예상외로 그녀의 얼굴은 밝았다.
'고마워
아들이 영락했어요'
다행히도 내가 퇴근 후,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이 보내온 사진까지 내게 보여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밝은 얼굴을 보니 다시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녀의 밝은 얼굴과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는 것도 그게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라운딩을 다 돌고, 모두가 잠든 시간이 되었다. 병동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잠과 싸우기도 하고, 예민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늦은 밤부터 새벽이면, 환자들의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환자들의 심전도와 산소포화도 수치를 나타내는 모니터 상에서 그녀의 자리에서 리듬이 이상해지더니, 이내 빨갛게 깜빡였다. 잠버릇으로 몇 번 전극이 떨어졌던 전적이 있던 그녀였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전극을 붙이기 위해 환자에게 갔다.
환자는 너무 얌전히, 정자세로 누워있었다. 전극도 모두 제대로 부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환자가 배가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다. 경동맥 부분을 서둘러 촉지 했다. 맥박이 촉지 되지 않았다.
- ㅇ층 ㅇㅇ병동 코드블루, ㅇ층 ㅇㅇ병동 코드블루
순식간에 병동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처치실로 환자를 빼내어 심폐소생술을 하였고, 다른 병동에서 온 헬퍼 간호사들과 당직 레지던트, 그리고 인턴까지 바글거리는 그곳에서 담당 간호사로서 침착하게 차팅을 하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새벽 시간인 탓에 보호자는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제발, 제발, 아드님이 오시면 반짝이는 눈으로 일어나서 맞이해 주세요. 믿는 신은 없지만 모든 신에게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호자는 병원까지 오는 데에 최소 30분이 걸린다고 했고, 소생의 가망은 없어 보였다.
그녀의 작은 몸이 부서져라 심장 마사지를 하고, 기도 삽관을 하고, 앰부백을 짜며 보호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꽤나 흐르고, 앳된 얼굴의 보호자가 도착했다.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멈춰달라고 울부짖었다.
상황은 너무나도 빠르게 전개되었다. 사망 선고와 사후 처리, 모든 게 순식간에 절차대로 진행되었다. 나의 감정과 보호자의 감정만이 엉망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눈물을 참아야 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앰부배깅으로 팽창했던 폐가 내뱉어내는 숨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들에게 전달되었길 바랐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환자였다. 감정 표현이 다양한 분이셨다. 수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가끔은 감정을 표현하느라 정신 사나운 쪽에 가까운 몸짓을 하곤 했었다.
그 몸짓들이, 삐뚤빼뚤한 글자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 떠돌아다녔고, 마지막 앰부배깅을 하던 순간 부풀고, 이내 내려가던 가슴 높이를 보며 그 마지막 숨결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언젠가 나에게 의사는 말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무조건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나와 정반대였던, 표현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말로 다 풀어내지 못했던 그녀의 죽음은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나의 목소리를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하도록 나의 목소리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가 되었다.
끝까지 감정 표현에 충실했던 그녀는, 마지막 숨에도 감정을 실어 내쉬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감정이 아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까지도 그녀의 숨결은 내 마음속에 조용히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녀가 그랬듯 내 소중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에 닿지 못한 마음이란 없다.
말로 건네든, 숨으로 건네든, 결국 누군가에겐 닿는다.
그녀가 아들에게 보내고 싶었던 사랑은 내 가슴속을 거쳐 어디론가 계속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정을 표현한다.
그 사랑의 길이 끊기지 않도록.
나는 이제 감정을 삼키지 않는다. 숨이 닿는 만큼 표현하며 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