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속에서 싸우는 법 (10)

지켜내지 못한 손

by 이샤라

그때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아아아아아——!!"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교회 안에 울려 퍼지자 주변의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 한 줄기 절규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들것에 실려 온 병사의 몸은 부패로 인해 심하게 침식되어 있었다.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단단히 묶여 있음에도 남은 사지가 사방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썩어가는 살점에서 풍기는 끔찍한 악취는 주변 공기를 뒤덮었고, 주변 공기를 찌르는 그 냄새에 몇몇 병사들이 얼굴을 돌렸다. 누군가는 뒷걸음질 쳤고, 누군가는 이를 악문 채 시선을 피했다.


그 광경에 시즈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온 힘을 다해서라도 저 고통을 멈춰줘야 했다. 시즈가 결연한 표정으로 부상병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노아가 황급히 시즈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노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의사가 아니면 저렇게 부패에 심각하게 감염된 사람과 접촉하는 건 위험해요. 감염되실 수 있단 말이에요!"


시즈는 온몸을 떨며 멈춰 섰다. 눈앞의 병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을 뒤틀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생명이 저런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것에, 시즈는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외쳤다.


"저렇게...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제가 어떻게, 어떻게 외면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놀란 노아는 입을 다문 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분노와 슬픔, 절망이 함께 담겨 있는 시즈의 목소리에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진 그는 결국 팔을 놓으며 마스크 하나를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세요. 조심하셔야 돼요."


시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리고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부상병에게 다가가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손은 불같이 뜨거웠지만, 시즈는 물러서지 않고 정화의 기도를 시작했다.


잠시 후, 시즈의 손에서 부드러운 푸른빛의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맑은 기운이 공기 중에 번졌고, 부상병의 신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주변의 병사들과 종군 의사들은 숨을 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시즈가 방어 능력을 사용하는 무녀라는 사실은 이미 익숙했지만, 이처럼 누군가를 정화하고 진정시키는 능력까지 지녔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외와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시즈는 눈을 감고 집중을 이어갔다. 이마 위로 땀이 흘렀고,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음에도 단 한 번도 부상병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기도가 계속될수록 부상병의 발버둥은 잦아들었고, 거칠던 숨결도 이내 조금씩 고르게 바뀌어갔다.


시간이 지나자 부상병의 몸은 약간이나마 진정된 듯 보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시즈를 바라보았다. 혼란과 고마움이 뒤섞인 눈빛이 잠시 교차했고, 시즈는 피로에 젖은 채로 그에게 조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 평화는 너무 짧았다.


"아... 안돼!!"


불과 몇 초 뒤, 부상병의 몸이 다시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갑자기 몸을 뒤틀며 고개를 젖히는가 싶더니, 갈라진 목구멍에서 무언가 끌어올려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짐승 같은 비명이 방 안을 갈기갈기 찢었다.


"끄르르르... 끄아아——흐, 흙——카아아악!!"


그건 사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질식과 울부짖음, 살점이 비틀리는 소리가 한데 섞인 날것의 울음.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가 깨어나는 소리였다.


"잡아! 붙들어!"


"팔 고정해! 고정하라고!"


몇몇 병사와 의사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는 마치 상상도 할 수 없는 괴력을 얻은 듯 사지를 휘저으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입에서는 검은 피가 역류하듯 뿜어져 나왔고, 끈적한 피가 바닥을 적시며 피비린내가 순식간에 퍼졌다. 몸이 격렬히 뒤틀리기 시작하면서 살점이 벗겨지는 동시에 뼈와 근육이 드러났고, 왼쪽 얼굴은 끓는 액체처럼 천천히 녹아내렸다.


병사들과 의사들은 인간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그를 더는 붙잡을 수 없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패와 광기에 질려 모두 뒷걸음질 쳤다. 혼란과 공포가 주변을 뒤덮었다.


시즈는 그 끔찍한 광경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부상병의 오른손을 붙잡은 채 간절히 기도를 이어갔지만,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손은 떨렸고, 숨이 막히듯 가빠졌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억누르며 간절히 빌었다.


"제발...... 제발 멈춰줘...! 제발... 제발......!!"


하지만 기도는 닿지 않았다. 부상병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고, 그의 몸은 안으로부터 무언가에게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소란을 듣고 아로스가 찾아와 병사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든 그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상병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리꽂었다.


"안 돼——!!"


시즈의 절규가 방 안을 가르며 퍼졌다. 그러나 이미 칼날은 심장을 관통했고, 부상병의 몸이 격렬히 떨렸다가 이내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입에서 마지막 숨이 새어 나왔다. 아주 작고 미약했지만, 이상하리 만큼 평온했다.


부상병의 흐릿한 시선이 시즈를 향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위로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기도하던 그녀를 향한 무언가가 스쳤다. 그것은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떠오른 감사였을까, 혹은 짧은 안도의 흔적이었을까. 그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시즈는 여전히 부상병의 오른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손끝은 더 이상 생명의 온기를 담고 있지 않았다. 그토록 고통 속에서도 단단히 쥐고 있던 힘은 완전히 풀려버렸고, 그제야 시즈는 눈앞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력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눈앞의 생명조차 지켜내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참아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눈물이 쏟아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살려야 했는데...... 살리고 싶었는데...! 흐윽... 아아아아아아——!!"


주변의 병사들과 의사들, 그리고 노먼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말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엔 참담한 표정이 드리워져 있었고, 침묵은 공기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 무언의 정적 속에는 시즈와 다르지 않은 무력감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로스는 말없이 시즈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죽은 부상병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시즈가 여전히 쥐고 있는 그 손을 함께 감싸 쥔 그의 손길은 차가운 죽음을 품고 있었지만, 묵묵히 슬픔을 받아내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위로조차 시즈의 슬픔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시즈는 이 순례가 험난할 것이라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을 넘어서는 참혹함이었다. 전선에서 마주한 광경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무너진 방어선, 괴물이 된 병사들, 그리고 눈앞에서 생명이 사라져 가던 순간.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절반 이상이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세계 어딘가에서는 이와 같은 참사가 계속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니, 어쩌면 이제 그런 비극조차 일어날 생명들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시즈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이 손은 생명을 구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한 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저런 고통을 받을까. 얼마나 수많은 절망과 죽음을 마주하게 될까.


이 여정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노아는 조금 전의 참상을 뒤로한 채 교회 밖으로 나왔다. 장작불이 타들어가는 불빛이 어슴푸레 전장을 비추고 있었고, 그는 불빛 너머의 전선 후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마룬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불꽃 방책에 몸을 던지는 파도의 악마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비명과 불길이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노아가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섰지만 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참담한 현실 앞에서는 어떤 말도 고통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다.


긴 침묵 끝에, 아마룬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책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내가 너무 늦었다."


"뭐가 말인가요?"


"조금이라도 더 일찍 전선으로 왔어야 했다. 한 시간, 아니 1분이라도 빨랐더라면...... 너무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군."


아마룬의 시선이 거대한 손바닥 위의 깨진 투구로 향했다. 그 투구는 다이크의 것이었다. 하루 전, 자신을 찾아와 설득하던 다이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아니 노아의 말이라도 받아들였다면 이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룬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강대한 전사로서의 명성이 무슨 소용인가? 지켜내지 못한 자들이 이토록 많거늘.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마룬의 시선은 다시 불꽃 방책 너머로 향했다. 검게 들끓는 파도의 악마들의 광기 어린 시선들이 끝없이 자신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불길에 몸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달려드는 놈들의 표적은 분명히 아마룬 자신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더는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처음에는 병사들과 함께 방어선을 재정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전선은 무너졌고, 재건에는 시간도, 자원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남아 있는 한 교회는 파도의 악마들의 위협으로부터 끝나지 않을 터였다.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날 것이다."


"떠난다고요? 당신이 떠나면 이곳은 이제 누가 지키는데요?"


"이렇게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은 것은 내 책임이 크다. 하지만 책임에서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야. 아는지 모르겠지만... 저 악마들은 지금 나를 노리고 있다. 내 안에 깃든 엘나의 생명력 때문이겠지."


노아는 고개를 돌려 파도의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명백히 아마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놈들을 최대한 북쪽으로 유인해야지. 그다음엔 이그니카로 갈 생각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나의 동족들과 대륙 최대의 용광로가 있다. 그리고, 세 명의 신들의 권능 아래에 놓인 곳이기도 하지. 그곳이라면 지금의 이 재앙에 맞설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자, 노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치 그 이름을 기다렸다는 듯, 가슴속 무언가가 격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이그니카. 오랫동안 가야만 한다고 믿어온 곳. 아마룬의 말은 그 결심을 더욱 또렷하게 해 주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너를 데려가달라고? 저 악마들을 뚫고 데려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저는 불의 이능을 지닌 사제의 후손이에요. 놈들은 불에 약하잖아요. 아마룬의 어깨나 손 위에 올라탄다면 위험할 일은 많지 않을 거예요."


"죽음의 땅을 인간의 몸으로 건너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무리 불의 이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분명 가는 길에 목숨을 걸어야 할 순간이 생길터인데."


"저는 의사예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패와 정면으로 맞섰어요. 그리고... 저 또한 이그니카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뭐지?"


"...15년전, 카노라스에서 헤어진 형을 다시 찾기 위해서예요."


아마룬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노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형은 카노라스가 멸망하던 날 그 혼란 속에 갇혀있었다는 소리였다. 만약 탈출하지 못했다면 살아남긴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룬이 보기에 그의 생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네 말대로라면, 너의 형은 카노라스의 혼란에 휩쓸려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예상에 둔 계획인가?"


"...그건...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형은 당시에 이미 성인이었고, 불의 대사제가 될 직속 후계자였어요. 제 생각일 뿐이지만... 저는 형이 분명 살아남았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표정에는 확신보다는 불안이 짙었지만, 그 안엔 믿고자 하는 강한 의지도 함께 담겨 있었다. 아마룬은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는 무녀랑 환시를 품은 기사와 함께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노아는 살짝 시선을 떨구었다.


"네... 맞아요. 길진 않지만, 두 분 덕분에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저는 그분들과 사명을 함께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 목적은 이그니카였고, 그 과정 속에서 함께했을 뿐이에요."


아마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두 분께서도 제가 형을 찾기 위해 여정길에 오른 것을 알고 계시니 붙잡진 않으실 거예요. 아마도... 응원해 주실 거예요."


노아의 표정은 확신이 없어 보였지만, 떠나는 이의 떨림과 남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장간을 찾아왔던 근성을 생각하니 거절하면 분명 쫓아올 것이 분명했다.


"좋다. 같이 가도록 하지."


"정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 할 것이다. 죽음의 평원을 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알겠습니다!"


"내일 동이 트는 대로 출발한다. 그러니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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