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이다

밤에 익어가는 이름들

by 구시안

검은 낮이 두 개의 태양을 물고
내 이름을 핥는다.


나는 내가 아니고

입술 하나가 나를 대신해 숨을 쉰다.


거울은 늙지 않고
나는 그 안에서 계속 바뀐다.


익지 않은 열매들이
서로의 피를 바꿔 마시며
같은 나무를 부정한다.


밤이 오면
나는 나를 버리고
다른 눈으로 나를 본다.


젖은 불이 타오르고
마른 물이 흐른다.


손은 나를 떠나고
눈은 늦게 도착한다.

나는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입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들의 이름이
내 뼈에 금처럼 박힌다.


길은 나를 잃어버리고
나는 길을 증명한다.

무너지는 계절의 틈에서
나는 나를 흘리고

타인의 얼굴로
조용히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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