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에서 창작자로 살아간다는 것
백남준이 독일로 날아갔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도 그와 동일하게 스무살에 일본 땅을 밟았고,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의 땅에서 장년기를 보내고 있다. 이곳의 물가는 높고, 급여는 낮다. 불행 중 다행인건, 어느 나라에 살건 그다지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은, 생전 와보지도 않았던 이곳 몽골에 와서 곧잘 하는 말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울퉁불퉁 달리다 보면, 모습을 드러내는 광활한 초원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야, 이거 땅 아까워서 쓰겠나, 벼농사라도 지으면 참 좋을텐데."
자연스러운 발상이지만 주변에 몽골 사람이라도 있을 경우, 나는 참 민망하다. 누구는 벼농사 못 지어서 안 하나, 이 동토에서 농사를 짓는 게 얼마나 어려웠으면 유목생활을 했을까. 목구멍까지 기어올라온 나의 자유로운 생각은 건조한 날씨에 다 말라버린 입 안의 침과 함께 강제 증발된다.
창작을 하는 기쁨, 이라고 하는 감각은 내 안에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알리라. 수능 공부에, 대학 학점에, 취업에, 결혼에, 육아에, 경제적 자유에 내 기쁨을 팔아치워 온 과거를 말이다. 물론 어떻게든 짬을 내어 할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했다. 핑계가 좋았으니까.
(중략)
여기 몽골에 산다고는 해도 수도 울란바토르에 거처를 마련한 지라 초원과는 소원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내 마음도 매일 아침 사람들로 꽉찬 버스처럼 틈이나 여유가 별로 없이 지내기 일쑤다. 그런데 나를 이렇게 만드는 도시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매일 같이 산책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것도 신기하다.
최근에 상업예술가로 지내봤다. 내 작품을 돈을 전제로 만들고 파는 일이었다. 느낌? 나쁘지 않았다. 페이? 나빴다. 또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몽골에서 100만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보다 한국에서 10만 인플루언서인 게 돈이 더 되더라.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일 땅을 밟고 드디어 피아노 앞에서 아무 것도 연주하지 않는 것을 연주한 백남준처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하는 걸 이곳 몽골땅에서 연습하고 있다. 틈이 없으면 틈을 만든다. 몽골에서 버스기사 아저씨가 좀처럼 뒤쪽까지 움직이지 않는 승객들을 향해 "Яваарай яваарай(야와레 야와레,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하는 것처럼, 나도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내 연출무대-인생-에 만드려는 것이다.
공간이 탁 트였을 때 나에게는 허락함, 수락함, 기꺼이함, 기뻐함 등이 함축된 YES 싸인이 떨어진다. 물론 몽골에서는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와도 상관없이 자동차가 지나갈 때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나를 허락하고 정신만 차리면 내 길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정답은, 예스. 단, 내게 여유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