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 지 좀 지났으나, 난 이번에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다 보고 나서 마우스를 움직여 크레디트를 다시 되돌렸다. 소방관들의 희생에 대한 헌사가 담긴 자막을 다시 읽었다.
집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지만, 이상하게 숙연해졌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가 아니라 추도 영화라는 것을. 106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우리가 그들에게 바치는 묵념의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001년은 정말 그렇게 먼 과거였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 그래서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소방관들이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고,목장갑을 끼고 화재 현장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낯선 것을 넘어 충격이었다. 그때 이미 우리는 인터넷을 사용했으며, 영화관에서 3D 영화를 봤다.
그런데 그 시대에 소방관들은 여전히 19세기 수준의 장비로 21세기 재난과 싸우고 있었다니! 이 괴리감이야말로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다.
곽경택 감독은 '친구'로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의 연출 방식은 늘 직설적이었고,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은 CGI의 유혹을 자제했다. 2020년에 촬영된 영화임에도 실제 불을 사용했고, 당시의 낡은 장비를 그대로 재현했다. 할리우드식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길이 폭발하고,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화려하게 연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다른 길을 택했다. 화려함 대신 진실을, 스펙터클 대신 증언을 선택했다. 영화 속 화재 장면이 다른 재난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이는 이유다. 그리고 바로 그 소박함이 더 무섭다. 이것이 실제였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주원은 이 영화에서 체대 특기생 출신 신입 소방관 철웅을 연기한다. 흥미로운 건 주원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다. 그는 '용팔이', '카터'에서 보여준 것처럼 액션에 강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방관'의 철웅은 액션 히어로가 아니다. 오히려 무력한 인물이다. 선배 용태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신입. 분노하지만 시스템 앞에서는 작은 존재일 뿐인 한 개인이었다.
주원은 이 무력함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단단한 몸을 가졌지만 트라우마에 떨고,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캐릭터. 이 역설이 철웅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악당은 방화범이 아니다. 영화는 범인을 얼굴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진짜 악당은 소방관들을 죽음으로 내몬 '시스템'이다.
방화복 대신 방수복, 생명보험 가입 불가, 국가 공무원도 아니었으며 낡은 장비, 특수 장갑 대신 목장갑을 끼고 인명 구조를 했던 그들! 거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력. 이 모든 것이 쌓여서 만들어진 구조적 폭력!...
영화 속에서 인기(유재명)가 아내 몰래 카드를 긁어 장갑을 사 오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웃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개인이 메워야 했던 것이 사실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에 철웅이 낭독하는 글이 나온다. 이것이 실제 순직 소방관의 글이라는 사실은 영화 밖에서 알게 되는 "정보"였다. 영화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한 젊은 소방관이 동료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누가 먼저 썼는지, 어떤 배경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기도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 여전히 누군가는 뜨거운 화염 속으로 들어가고 있고, 여전히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뒤로 미루고 있다는 것이 아닐는지...
영화는 이 기도문을 영웅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제시한다. 그래서 더 무겁다.
영화는 소방관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의 가족도 함께 보여준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용태를 비롯 소방대원들의 죽음 이후다. 그들의 가족들은 생명보험도 없이,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남겨진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의 가족이 받는 대우가 이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소방관 한 명의 희생은 그 개인만의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 전체의 희생이다. 남편을, 아들을,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사회적 책임!...
현재는 순직 소방관 가족에 대한 지원이 과거보다 개선되었다.(물론 만족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2001년 당시에는 최악이었다. 영화는 이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사실 영화 "소방관"은 2020년 촬영 완료가 되었으나 2024년 12월에 개봉을 했는데 그 사이 4년의 공백이 있다. 그 이유는 곽도원 배우의 음주운전 논란 때문이었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개봉을 가로막았다.
배우 개인의 잘못과 영화의 가치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이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은 한 배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들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4년의 지연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또 다른 층위를 더했다. 2020년, 소방관이 국가직 공무원이 된 바로 그해에 이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많이 달라진 걸까?...
'타워링', '터널', '비상선언'. 한국 재난영화들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하지만 '소방관'은 그 계보와는 조금 다른 곳에 서 있다.
전형적인 재난영화라면 위기-갈등-해결의 구조를 따랐을 것이다. 영웅적 리더가 등장하고, 극적인 구조 장면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방관'은 그런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막막함을 준다. 결말에서 여섯 명의 소방관이 매몰될 때, 우리는 어떤 해결도 보지 못한다. 영화는 냉정하게 사실을 기록할 뿐이다.
이것이 '소방관'을 재난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증언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 진섭은 철웅에게 말한다. "군대는 매일이 훈련이지만 여기는 매일이 실전이야." 이 대사는 단순히 소방관의 일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가르침이다.
베테랑 소방관들은 신입들에게 기술만 전수하는 게 아니다. 사명감을, 책임감을, 동료애를 전한다. 용태가 철웅에게 그랬듯이. 진섭이 모든 대원들에게 그랬듯이.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건 이 아름다운 전승만이 아니다. 열악한 시스템도 함께 세대를 넘어 전해졌다는 것. 선배들이 겪었던 불합리를 후배들도 겪어야 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끊어야 할 악순환이다.
2020년 국가직 전환 이후,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상황이 나아졌다. 하지만 현장의 위험은 여전하다. 장비는 개선되었지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처우는 나아졌지만 PTSD를 겪는 소방관들을 위한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영화를 보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문득문득 생각한다. 나는 과연 화재에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는가?
소방안전은 소방관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불법주차를 하지 않는 것, 소방차 길을 비켜주는 것, 화재 예방 수칙을 지키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이 쌓여서 소방관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영화 '소방관'이 상기시키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우리의 안전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우리가 빚지고 있다는 사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감사의 말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안전에 더 책임감을 갖는 것임을...
솔직히 말하자면 '소방관'은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캐스팅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서사는 예측 가능하고, 캐릭터들은 때로 전형적이다.
진섭(곽도원)과 철웅의 갈등과 화해는 익숙한 구도다. 베테랑과 신입, 원칙주의자와 감정주의자의 대립. 우리는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이런 구조를 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불완전함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본질은 서사의 기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본질은 기억에 있다. 잊혀서는 안 될 것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
평점을 매기는 건 항상 어렵다. 특히 이런 영화는 더 그렇다. 예술적 완성도만 따지면 더 낮은 점수를 줄 수도 있고,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면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필요한' 영화다. 불완전하지만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불법주차된 차들 때문에 분통을 터뜨렸는지, 아마 대부분의 관람객들도 나와 같았을 것 같다. 좁은 골목 그것도 오르막길에 불법주차된 차들 때문에 소방차가 지나갈 수 없어서 소방관들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2001년 3월 4일, 홍제동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소방관! 영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하다. 완벽하지 않지만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해야 했고, 곽경택 감독이 그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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