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삶은 곧 경력단절이기도 하다.

by 한냥이

놀이터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선이 엄마!”

첫째 아이 친구의 엄마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친다.

‘저 엄마, 내 이름은 알까? 내 나이는 아나?’


이 동네에서 나는 ‘누군가의 엄마’로 불린다.


동네 엄마들은 나를 ‘누구 엄마’라 부르고,

아이들은 ‘아줌마’라 부르고,

유치원과 어린이집 선생님은 ‘어머님’이라 부른다.


그렇게 불린 지, 어느새 6년째다.


내 이름은 한나희.

나이는 서른 넷이다.

만 5살 여자아이 선이와

만 3살 남자아이 환이를 키우고 있다.

두 살 터울의 남매다.


내 인생 최고의 성취는 서울대를 나온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성취이기도 하다.

이것이 내 현생을 이렇게 옭아맬 줄이야.


27살에 결혼했다.

29살에 첫째 아이를, 31살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다니던 공기업에는 육아휴직을,

병행하던 대학원 박사과정에는 휴학을 신청했다.

그러고 5년이 흘렀다.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인 남편은 나보다 2년 늦게 공기업에 취직했다. 나와 같은 회사는 아니다.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사회의 가스라이팅과 남편의 벌이가 조금 더 좋다는 현실적이 이유로 육아휴직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우리의 출발선은 같았는데,

나는 5년 간의 경력단절을, 남편은 승진을 했다.


커리어의 황금기인 30대 초반에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된 나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다.

승진하고, 이직하고,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이 말이다.

친구들과 나를 비교했고, 심지어 남편과 나를 비교했다.

내 인생이 아까웠고, 억울했고, 아이들과 지내는 가정주부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육아 스트레스와 극심한 우울감에 정신과 약을 6개월 정도 먹었다.


이 답답한 마음을 변에 겨우 토로해 본 적이 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너 그거 서울대 나와서 그래. 서울대 여자 종특이야."

서울대 나왔기 때문에, 아이들만 돌보며 사는 자신의 삶을 아깝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학력이 아닌 여자들은 남편들이 벌어다 주는 삶을 당연히 여기고, 심지어 남편을 떠받들며 산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 둘을 낳은 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완벽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아이 둘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삼 남매여서 그런가 형제자매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아이를 낳는 것이 내 삶의 숙제라면 빨리 그 숙제를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 세대치고는 이른 나이에 아이 둘을 낳았다.


커리어 욕심도 있으면서, 이 와중에 아이 둘까지 낳으려고 하다니! 아니, 실제로 낳았다니. 욕심이 너무 많았나 보다. 내 선택으로 낳은 아이들인데, 이후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지 못했다. 금방 회사와 대학원에 복귀해서 다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이면서, 일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싶었다.

근데 내 몸은 하나였고,

둘 다를 이루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그중 포기하기 쉬운 커리어를 접었다.


주변의 도움 없이 홀로 아이들을 키울수록, 더 이 삶에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했.

복직과 복학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가 엄마의 자리를 비우면, 누가 이 어린아이들 돌본단 말인가?'

그렇게 나는 이 동네에 붙박여 있는 '선이 엄마', '환이 엄마'가 되어갔다.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육아 얘기로만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이름을 물어봐주길,

내가 하던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물어봐주길 바랐다.


물론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이 나의 1순위이다.

가정이 무엇보다 제일 소중한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에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도 성장하고, 성취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진짜 내 안의 욕구인가?

아님 정말 서울대 나온 나 스스로가 아까워서, 전업주부의 삶을 평가절하하는 사회의 시선이 불편해서 생긴 욕구인가?


사실 모르겠다. 정답은 둘 다일 것 같다.

입시 성공이라는 성취 경험을 맛본 나로서는 계속해서 나의 성취를 통해 도파민을 얻고 싶었다.

또 실제로 서울대를 들어가기까지 공들인 나의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딸아이에게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결국 이렇게 주부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둘째 아이가 18개월을 넘길 무렵, 난 복학을 결정했다.

내가 제 발로 들어갔던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