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되고, 엄마는 안 되는 것.

by 한냥이

4년 전, 내가 건강검진을 하는 날이었다.

남편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연차를 썼다.

새벽에 난 아이와 남편이 아침식사로 먹을 밥과 반찬을 데우기 쉽게 준비해 뒀다. 전날 남편에게 미리 알려두었다.

난 남편과 아이가 깨기 전에 조용히 집을 나섰다.


건강검진센터에 앉아 대기 중에 핸드폰으로 홈캠에 접속해 봤다.

기상한 남편은 내가 준비해 준 음식이 아닌, 냉동 핫도그를 데워서 아이에게 아침 식사로 주고 있었다.

내가 준비해 둔 밥과 반찬을 데우는 게 귀찮아서, 그걸 아이에게 떠먹이는 게 귀찮아서였다.


난 짜증이 났다.

남편은 매사 육아에 대충이었다.

자기가 편한 것이 최우선이었다.


이 일을 동네 엄마들에게 말하면,

그래도 핫도그라도 챙겨준 게 어디냐고 말한다.

진작 남편에 대한 기대는 없어진 눈치였다.


그렇다.

아빠가 아이에게 피자를 사주면 '좋은 아빠'가 되고

엄마가 아이에게 피자를 사주면 '나쁜 엄마'가 된다.


아이 건강을 책임지는 주양육자인 엄마가 아이에게 패스트푸드를 사주면, 주변에선 고깝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본다. 엄마 스스로도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든다.


반면, 아빠가 사주는 피자란 '가정적인 남자'의 상징이다. 아이들을 위해, 그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사 오다니! 그런 남자는 너무나 따스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로 분류된다.


아이를 두고 친구들과 여행을 간 엄마는 모성애 없고 무책임한 엄마가 된다.

그러나 아빠의 경우엔 그저 사회생활의 연장선으로 바라봐준다.

주말에 골프 치러 나가는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엔

아빠는 되고 엄마는 안 되는 것들이 참 많다.


또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여보 나 저녁에 영어회화 학원 등록하려고. 오늘 퇴근하고 테스트하러 가보게.'


난 답장했다.

'지금 나한테 통보하는 거야?

애 나한테 맡겨 놨어?

난 오빠가 회사 근무하는 시간 동안만 단독으로 육아를 할 뿐, 그 외의 시간은 우리 둘의 공동 육아 시간이야.

자기 계발은커녕 경력단절된 와이프가, 세상이랑 단절된 와이프가 불쌍하지도 않냐?

당장 집으로 와'


아이가 태어난 후로 내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닌데, 남편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자기가 선택할 수 있었다.

남편 입장에선 회사 끝나고 한두 시간 다녀오는 게 뭐 그리 문제냐 싶었을 것이다.


나에게 남편의 퇴근은 처음 숨 돌리는 시간이었다.

남편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지 확인하려고 시계를 수십 번 쳐다본다.

남편과 같이 먹는 저녁은 내가 제대로 된 끼니를 먹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이를 대신 봐주는 남편 덕분에, 맘 편히 앉아서 밥 먹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다지 관심 없는 남편에게 전하는 오늘 아이와 있었던 일들은 (남편이 대답 없이 듣고만 있어도) 나에게 고난을 함께 헤쳐나가는 파트너가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일이었다.

그게 그렇게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남편의 자유는 나의 독박 연장을 의미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닌, 통보하는 저 말투도 싫었다.

자기의 자기 계발을 응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몇 시간 더 육아하는 일이 별일 아닌 듯이 말하는 저 태도 말이다.


이 일을 동네 엄마들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다.

돌아오는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선이 엄마, 왜 그래 남편한테. 자유시간 좀 줘. 선이 아빠에 비하면 우리 남편은 아주 왕처럼 살고 있네."


나보고 독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이 잘 못 된 걸까?

왜 나는 계속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엄마로서의, 주부로서의 삶은 나만 감내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못 할 바엔 너도 안 돼.'라고 말하는 나는,

그저 못된 심보를 갖고 있는 여자인 건가?


엄마에게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 사회 속에서 나는 '비정상적이고 독한' 여자가 되어갔다.






작가의 이전글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