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나를 일으켜준 사람들

by 한냥이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걱정 끼쳐드리기 싫어서 그랬다.

딸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 쓰러지실 거 같았다.


언제까지 숨길 순 없으니, 수술 끝나고 말씀드려야지 싶었다.

그런데 친언니가 나한테 말했다.

"너, 니 딸 선이가 똑같이 그랬다고 생각해 봐. 엄마가 너 수술 끝나고 알면 얼마나 자책하겠어."


그래서 고민 끝에 결국 엄마에게 전화했다.

수술 삼 일 전 날이었다. 암이라는 건 살짝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엄마 나 12월에 건강검진 했는데 가슴에서 뭐 물혹 같은 거 발견돼서 제거해야 한대."


엄마는 속았다. 그런데 이틀이 가질 못 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한 엄마는 나에게 캐물었고, 결국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나의 부모님은 절망했다. 내 자식이 암이라니.

부모님의 삶도 그렇게 멈췄다.


부모님은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기도했다. "엄마 아부지. 나희 좀 살려주세요."

그러다 원망도 했다. "왜 나희 안 지켜줬어요. 그렇게 예뻐한 손녀면서."


내 눈에 내 아이들 밖에 안 보이듯이,

부모님 눈에도 나밖에 보이질 않았다.


일 하시는 부모님은 틈틈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서울로 날랐다. 비빔국수, 오징어볶음, 김치어묵국, 연포탕...


부모님께 아픈 자식은 그 자체로 불효였다. 그래서 나는 빨리 낫고 싶었다.




가까운 주변 친구들에게는 서서히 알렸다.

사실 알리게 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돈을 모아 모자가발을 사주었다.

가발이 달려있는 일체형 버킷 모자이다.

40만 원이나 하는 그 모자를 사줬다.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내게 달려올 수 없는 친구는 계속해서 집에 무언가를 보냈다.

삼계탕도 배달시켜 주고, 빠진 머리카락을 쓸 빗자루와 터진 입술에 바를 립밤도 배달시켜 줬다.


멀리 사는 한 친구도 계속 무언가를 보내주었다. 건강식 간식과 따뜻한 차.

수술 전날엔 직접 찾아와서 마음이 담긴 편지와 따뜻한 밥 한 끼를 선물해 주고 갔다.


고민 많은 내가 병상에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다이어리와 문구를 선물한 친구도 있었다.


야채수를 달여서 2리터 유리병에 담아 대전에서 서울까지 온 친구도 있었다.


내 곁에서 내 힘듦을 같이 견뎌 준 친구들이었다.

남편과 부모님께 하지 못 하는 말을 친구들에겐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의 걱정은 우습게도 '내가 잘 살아왔네'를 느끼게 해 주었다.


죽을 때 내 장례식을 지킬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없더라도 내 아이들을 한 번씩 들여다봐주겠지.' 생각했다.




문제는 동네 엄마들이었다.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

알리기 싫었다. 왜였을까?

친구 사이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픈 엄마'로 보이기 싫었다.

아픈 엄마를 둔 내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길까 봐, 동정할까 봐였다.


복직한 줄 알았는데 다시 동네에 있는 나를 보고,

긴 머리를 자른 나를 보고 동네 엄마들이 물었다.

"회사 안 가요 오늘? 머리 잘랐네요?"


나는 하루는 휴가라고 했다가, 또 다른 하루는 재택근무라고 말했다.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아픈 나를 꽁꽁 숨겼다.


그렇지만 이 동네 엄마들 중에서 나와 친구가 된 엄마들도 있다.

3명인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이다.

모두 첫째 아이 친구 엄마들이다.

그들에겐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털어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말하길, 항암 치료 후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 집 문 앞에는 음식이 든 쇼핑백이 쌓여갔다.

아이들 저녁거리였다.

백김치, LA갈비, 오징어볶음, 밑반찬, 계절 과일 등...

그렇게 그들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짐을 덜어줬다.


또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e알리미로 첫째 아이의 유치원에서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아이 유치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소풍을 가는데, 봄 소풍 계획이 적혀있었다.

날짜: 5월 14일 수요일

준비물: 점심 도시락, 간식, 물, 단체 학급 티셔츠


4차 항암치료 바로 다음 날이었다.

도시락을 싸야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물론 남편이 자기가 하겠다고 했지만

못 미덥기도 했고, 내 손으로 싸주고 싶었다.

김 펀치로 주먹밥에 눈도 붙여 넣고, 문어 소시지도 굽고, 귀엽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내 고민을 읽었을까?

첫째 아이 친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이 엄마! 그날 내가 선이 거까지 도시락 쌀게요. 어차피 아인이 것도 만들어야 하니까. 간식도 내가 챙길게요."


그 문자를 받고 하염없이 울었다.

아이는 내 아킬레스건인데, 그걸 건드렸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주는 그 고마움에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이를 동정할 거라고 섣불리 오해했다.

그들은 나에게 헤쳐나갈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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