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에 연연하지 않기

동네 엄마들과의 관계가 갖는 의미

by 한냥이

불교에 '시절인연'이라는 용어가 있다.

정확한 의미는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인데,

요즘에는 '모든 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쓰인다.


내가 처음 저 단어를 접한 건 한 노래 때문이었다.

트로트 가수 이찬원이 '시절인연'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생각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과 비슷한 맥락인가?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영원할 것 같아 보이는 부모 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도 사실 시절인연이다.

죽음 앞에 모든 관계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관계는 '동네 엄마들과의 관계'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매개로 맺게 되는 관계 말이다.

육아휴직을 한 엄마라면, 동네 엄마들과의 관계는 인간관계 중 가장 일상적이고, 지배적인 관계가 된다.


내가 첫째 아이를 낳은 건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이었다.

둘째 때에 비하면 바로 복직하는 엄마가 드물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그때 당시 우연이었는지는 사실 모른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한 2021년에도 코로나는 여전히 유행이었고, 원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가정보육을 한 달이나 해야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네 엄마들과의 교류가 많아졌고, 때론 공동육아를 하기도 했다.

우연히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들도 모두 첫째였고, 아이를 처음 낳아 기르는 '첫째 엄마'들은 이 만남에 적극적이었다. 함께 육아했고, 반찬을 나누었고, 정보를 공유했고, 육아 스트레스나 걱정을 해소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 보는 이 관계에서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무언가 '피상적인 관계'라고 해야 할까나?


수많은 얘기를 나누는데

대화하는 사람은 누구 엄마, 누구 엄마, 누구 엄마일 뿐, 거기에 '진짜 개인'은 없었다.

엄마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같았다.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묻지도 않는다.

그들의 핸드폰에는 내가 '선이 엄마'라고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나이는 서로 알게 되었다.

그 외의 개인적인 정보는 묻지 않는다.

아이와 관련되지 않은 내용은 서로 꺼내지 않는다.


'나'를 숨기고, '선이 엄마'라는 타이틀로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이다.

그래서 어색하고 어려웠다.

그땐 나를 드러내지 않고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몰랐다.


어느 순간, 대화 중에 나를 드러낸 순간이 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후회가 몰려왔다.

집에 와서 이불을 걷어찼다.

'나 왜 쓸데없는 말했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는 '나'이기 전에 '선이 엄마'였다.

그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그게 아이에게 해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들 관계에선 왜 쓸데없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지?

엄마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건가?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덧없음이 느껴졌다.




난 사람을 피상적으로 대하는 법을 몰랐다.

나는 늘 주변 사람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왔고, 그러려면 나를 드러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내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남들이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난 '엄마 대 엄마'가 아니라, '개인 대 개인'으로 가까워지고 싶었다.

내가 '나'로서 다가가자, 동네 엄마들 중 몇몇도 내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과는 진심으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단, 나는 이 관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관계들도 모두 '시절인연'이었다.

같이 시기를 함께 지나면서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혹은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레 흩어질 인연이었다.


그때는 이 사실이 서운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첫째 아이 친구 엄마들 중에는 아직도 나와 시절인연을 함께 이어나가는 엄마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엄마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억지로 이어 붙이려 하지 않는다.

인연이 닿을 때는 따뜻하고 솔직하게,

떠날 때는 담담하게.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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