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는 후천적이다.

by 한냥이

누가 엄마의 모성애는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했는가?


내 경험상, 모성애는 후천적이다.


아이들 낳는 순간 이 아이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히 든다. 그런데 사랑은? 낳자마자는 아닌 거 같다. 오히려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이 아이의 생명과 삶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부담감이 아이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예뻐 보이기보단,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무섭고 불안하기만 했다.


아이를 기르면서도 아이에게 미칠듯한 모성애(대게 모성애는 엄마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를 느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죄책감이 들었다. 혹시 '나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나는 육아에서 벗어나고만 싶지?

물론 벗어날 기회를 누군가 주어도 내 발로 벗어나진 못 할 것이다. 나는 그만큼 책임감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심리검사를 받다가 문장 완성형 검사를 했던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앞 문장이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때' 이면 그 뒷 문장을 작성하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저 앞 문장에 '남편에게 연락한다'라고 작성했다.


검사 중에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문장도 나오는데, '나의 어머니는'이라는 앞문장에 '희생적이었다.'라고 작성했다. 나의 뒷문장을 보고 심리상담사는 내가 희생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엄마는 가정을 지키고 희생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내 꿈을 펼치지 못하는 이 삶에 우울해한다고 진단했다. 온전히 양립할 수는 없는 두 종류의 삶에서 나는 엄마의 삶을 택하면서도 나만의 삶을 갈구했다.


그 갈구가 우습게도 아이를 원망한 것은 아니어도, 육아에서 진절머리가 나게 했고 남들은 날 욕하겠지만 내 모성애가 자라는 것을 막았다.


정신도 피폐해졌지만 몸도 많이 망가졌다.

숙면 부족, 잘 챙겨 먹지 못하는 끼니, 육아 스트레스는 내 몸을 망가뜨리기 쉬운 쓰리 콤보였다.

심지어 첫째 아이 때에는 척추분리증 진단을, 둘째 아이 때에는 더 심해져서 척추전방전위증 진단을 받았다. 엄마에게만 집착하는 두 아이들을 안아 들다가 허리가 나간 것이다.


하루는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걷지도 기지도 못 했다. 이 순간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금 이 집에 어른이라곤 불구인 나 하나인데,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겨우 멀리 떨어져 있던 내 핸드폰이 손에 닿았고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게 육아는 그렇게 무서운 일이었을 뿐, 사랑 가득한 장면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말한다.

내가 제일 빨리 복직할 줄 알았다고.

아이들을 계속 돌보는 삶을 택한 걸 보니 모성애가 강한 것 같다고.


사실 모성애 때문은 아니었다.

아까 말했듯이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정형외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주사 네 방을 척추 주변에 맞고 다시 직립보행이 가능해진 나는 바로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근데 아마 회사 일을 하다가 이런 상황이 되었어도 내 일을 끝마치러 회사로 달려갔을 것 같다.

그렇다. 나는 회사에서 일하듯, 지금 내게 주어진 육아라는 일을 잘 수행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쨌든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에겐 모성애가 있다.

명확히 느껴진다.

언제 생긴 건지는 모르겠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지진 않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남들처럼 모성애가 있다.

아이들에게 충만한 사랑을 느낀다.


아침에 눈을 떠서 나에게 달려오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행복해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 모성애는 그렇게 하루하루 일상을 거듭하면서 다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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