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키미 Apr 09. 2021

직장인 작가의 책 쓰기 5원칙

ENFP도 책 낼 수 있다. ENTJ로 바뀌었지만.

직장인이 제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해 보니까 그건 그냥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진짜 어마무시하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어려운 걸 해낸 지금. 벌여놓고 끝내지 못한 일 오조오억 개였던 직장인 작가가 했던 시도들을 기록한다.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모든 직장인 작가님들에게 존경을 보내며.






1. 매일 쓴다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에서 김은경 작가는 글쓰기 모드를 '예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상 앞에 앉자마자 요이땅, 하고 글이 써지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멍하니 빈 페이지를 바라보다가 겨우 조금 쓰기 시작했는데 시계는 자정을 넘어가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은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매일 조금이라도 써야 한다. 단 몇 글자라도. '글쓰기 모드'를 유지해야 '글쓰기 무드'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쓴 날의 나를 칭찬하며. 어떤 달에는 동그라미가 텅텅 비었다. 쓰지 않은 날에 대한 부담과 쓴 날의 만족감이 버무려져 어쨌든 천천히 나아갈 수 있었다.


2020 글쓰기 달력. 8월은 팽팽 놀았다.



2. 아침에 쓴다

출근 전 아침 시간. 노트북을 열고 구글밋에 접속했다. 집필 중인 친구와 만나는 시간이다. 사과 머리를 하고 파자마 차림으로 아침 인사를 나눈다. 짧게 대화를 하고 "오늘은 무슨 글 쓸 거예요?"를 묻고 답한다.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고 오디오를 Off한 뒤부터는 각자의 글쓰기에 집중한다. 우리는 그 시간을 '글쓰밋'이라고 불렀다.


업무 중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날은 퇴근 후에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런 날이 많았다. 아침 글쓰기는 궁여지책이었다. 그마저도 혼자 도전할 때는 번번이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늦잠 자서 실패. 밤새 올라온 SNS 피드 재밌어서 실패. 뉴스레터 몰아보느라 실패. 마켓컬리 배송 정리하고 아침 차려먹느라 실패. 그러나 만날 사람이 생기자 '밍기적'과 '딴생각'이 사라졌다. 밤 사이에 충전된 에너지를 나에게 먼저 쓰고, 남은 걸 회사에 쓰자 삶의 균형도 나아졌다. 


다검(무과수)과 글쓰밋 중. 2020년 9월 어느 아침.



3. 1주 1편 초안을 쓴다

안 그래도 느린 데다 퇴고 중독자인 초보 작가가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화 완성 후에 2화 시작하는 식으로 했다간 10년을 써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쌀알이 톡톡 씹히든 1주 1편을 써서 에디터에게 제출했다. 완성된 글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좋게 말하면 '초안', 사실상 나만 알아보는 수준의 '구성안'이다. 


1주가 끝나는 일요일이 되었는데 머리 부분까지밖에 못 썼으면, 허리와 다리 부분은 '대충 이런 흐름으로 쓸 예정이다'라고 메모해 놓고 손을 뗐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또 새로운 글을 썼다. 그렇게 15편 정도의 초안을 모으자 어렴풋이 책의 뼈대가 보였다. 어설프게 잡았던 목차를 정비하며 책의 흐름을 잡고 한 편 한 편 다시 열어 글을 완성해 나갔다. 


에디터 호주박 님과 미팅 중. "채찍이 어디 갔더라?"


2020년 3월, 달랑 1편을 썼을 때 에디터와 미팅하고 이런 메모를 했다.

사실 To Do는 간단하다.
1) 잘 쓰는 건 둘째치고 일단 쓰기
2) 잘 못 쓴 거 골라내게 많이 쓰기


1주 1편은 '일단 쓰기'에 해당하는 작업이었다. 골라낼 정도로 '많이 쓰기'는 끝까지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27쪽짜리 책이 나왔으니 반 이상 성공!



4. 피드백을 받는다

글에만 매몰되어 독백하다 보면 독자를 잊는다. 그러면 이야기가 고루해진다. 그러다 자신감이 옅어진다. 내 안에서 자기 주문을 끌어다 쓰는 건 한계가 있다. 가끔 밖으로 나가 응원, 독려, 칭찬, 지지 같은 걸 받아야 버텨낼 힘이 생긴다. 글을 말로 변환하여 공유하는 행위는 그래서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서로의 초안을 공유하는 모임 '초안클럽'을 통해, 꾸밈없이 조언해 주는 친구를 통해, 내 편인 지인들을 통해, 내 글의 1번 독자인 에디터 호주박 님을 통해 꾸준히 피드백을 받았다. 꼭 언어적 피드백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자세, 긍정의 끄덕임, 공감의 눈빛 등도 포함된다. 내 말을 메모하는 분 앞에서는 조금 벅차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점을 "솔직한 피드백을 받기 위한 자세 ― 픽사" 편에 담았다.


초안클럽 멤버들과 기념 사진 ©이주연, <디렉토리 No.9>



5. 마감을 믿는다

나의 책 쓰기는 1년 8개월짜리 장기 프로젝트였다. 1,2,3,4번을 성실히 수행한 것처럼 썼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시도한 것일 뿐. 1년 이상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제대로 '썼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6개월 중에서도 마지막 3개월에 초인적인 힘이 솟아났다. 마감의 힘이다.


흔히들 글은 작가가 쓰고 책은 편집자가 만든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글은 마감이 쓴다. 
'작가'와 '마감에 몰린 작가'는 다른 사람이다. 


바퀴벌레가 도망갈 때 순간적으로 아이큐가 200을 넘긴다고 한다. (340이라는 말도 있고. 믿거나 말거나.) 마감에 몰린 작가도 바 선생과 다르지 않다. 혹시 지금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작가가 있다면, 마감의 힘을 믿어 보시라. 어떻게든 끝은 나게 돼 있다.






"출간했으니 홀가분하겠다"는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홀가분한 건 맞지만 이유가 좀 다르다.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홀가분하다.


사실 출간일을 세 번이나 미뤘다. 계약서에 쓰여 있는 목표일은 2020년 9월. 그러다 현실을 반영해 2021년 1월로 협의했다. 자기계발서는 연초에 잘 팔리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글은 마음처럼 써지지 않았고, 결국 또 3월로 미뤘다. 출판사에서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약속에 평판이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약속을 어길 때 너무나 괴롭다. 그래서 갖은 노력을 동원해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글쓰기는 '노오력'을 해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나를 과대평가했다. 


1월도 아니고 3월도 아니고 4월.

이제야 약속으로부터 홀가분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랜딩에 대한 오해. 브랜드가 되기 위한 이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