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속을 보듬는 중이었습니다.
어른으로 사는 이야기
오랜만에 동네 뒷산을 오른다.
엊그제도 갔으니 오랜만이라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슬슬 산책이나 할까 하는 맘이 아닌 '오늘은 저 산을 정복해보자'하는 마음은 오랜만이었다. 찐친인 남편과 나선 출발은 제법 들뜨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니 얼마를 걸었다기엔 겨우 산의 입구에 왔을 뿐인데 평소보다 호흡이 힘들다는 걸 느꼈다. 맘을 너무 가열차게 먹고는 시작부터 또 너무 열정적으로 걸었던 걸까 하며 오르막길을 다시 내딛는다.
역동적인 산길의 첫번째 고비를 넘고는 알았다. 몸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또 잊었다는 걸. 때로 난 기대와 설렘, 열정 덕에 몸을 잊는다. 그런 채로 시작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오늘이 그랬다. 왜이러는걸까 자책을 한 3초쯤 하고는 열정을 반쯤 내려놓기로 한다.
천천히 호흡하며 느리게 걷는다.
바로 앞 한 걸음에만 충실하며 걷는다.
정복하겠다는 열정을 들여와 좋지 않은 몸을 달랜다.
돌아보면 오늘처럼 열정에 반해 느리게, 마치 열정 따윈 없는 사람처럼 걸어야 할 때가 있었다. 내 모습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그 당시엔 어른들이었던) 나더러 젊은 애가 왜 그리 무기력하냐 했다. 왜 그리 열정이 없냐 했다. 밖으로 뻗치는 열정을 굳이 끌어들여 속을 보듬는 중이었던 걸 알 리가 없었던거다.
오늘 남편은 나보다 살짝 앞서 걸으며 몇걸음 가다가 뒤를, 다시 몇걸음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본다. 어디가 어떠냐고 묻지도 않는다. 무심해서가 아니란 걸 안다. 어느새 20년지기가 된 그는 그렇게 늘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줬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며 어줍잖은 위로도 하지 않는다. 왜그리 나약하냐고, 그 열정은 그저 3분짜리였냐고, 그렇게 자기 몸을 모르느냐고 따져묻지도 않는다. 그냥 저렇게 옆에 있으며 신경을 세우고 지켜볼 뿐이다. 그는 아는 까닭이다. 내가 애를 써서 나를 보듬는 중인 것을. (아, 혹시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ㅋ)
느린 걸음을 기분 좋게 걷는다. 그 덕에.
아픈 걸음은 보듬어지고 달래진다. 그 덕에.
그 덕에 2시간여의 산책길을 완주했다.
한 사람.
그냥 나를 지켜봐주는 한 사람.
채근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신경써 봐주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어른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이들에겐. 우리의 청년들에겐.
그리고 우리 사회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