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숫자의 냉정한 폭력에
숨이 막힌 날은
햇볕이 쏟아지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오전 수업만 끝나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날이었지만,
아버지의 “학교 끝나면 바로 와라”는 한마디는
그 자유를 순식간에 걷어갔다.
어린 마음에는 수확을 향한 설렘과
묘한 불만이 뒤섞였다.
그래도 곧 우리 집 양식이 생기는 날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 집은 땅 한 평 없었다.
그래서 땅부자, 장 씨네 밭을 빌려
감자를 심었다.
부모님은 봄부터 여름까지 허리를
땅에 묶어두고 살았다.
지주는 흙 한 줌 만지지 않고도 절반을 가져간다.
어린 나도 그 -세상의 룰- 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감자 순을 잡아당기자 흙속에 숨어있던
커다란 진주들이 햇빛 속으로 드러났다.
후각을 통해 전해지는 진한 흙내음에는
부모님의 계절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뿌린 만큼 거두는 세상- 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감자 캐기가 마쳐갈 즈음,
뒷짐을 지고 나타난 지주의 등장과 함께 부서졌다.
그는 마을 공기를 눌러 앉히는 큰기침을 하고는
짧게 말했다.
“올해부턴 60대 40이다.”
말 한마디에 수확이 뒤틀렸다.
50대 50이던 숫자는 60대 40으로 바뀌었고,
그 변화는 비율이 아니라 강탈이었다.
부모님의 땀과 한 달 양식,
심지어 내 몫이었던 수업료까지 소리 없이
잘려나갔다.
아버지는 적어도 세 번은 날라야 할 감자를
두 번 만에 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털썩.”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한숨은 마루 아래로 천천히
꺼져 내려갔다.
그 소리 뒤로 어머니의 깊은 한숨이 따랐다.
억울함이 말이 되지 못해 몸속에서
바로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는
“50대 50”이라는 숫자가 계속 굴렀다.
그 숫자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마음 한쪽에서
멍이 번졌다.
그리고 분노는 엉뚱한 곳을 향했다.
친구 덕훈이.
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덕훈이는 마음씨 따뜻한 아이였다.
간식이 생기면 나부터 챙겼고,
내 사정을 알아도 어색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화낼 용기 없는 세상을 대신해
가장 안전한 대상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대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달빛 아래 서 있는 덕훈이 곁에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창고로 가더니
바구니를 뒤집었다.
감자가 후드득 쏟아졌다.
그 소리는 잃어버린 10퍼센트가 돌아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내던져버린 우정이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소리였다.
달빛이 덕훈이의 등에 부서져 떨어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등은 나의 옹졸함까지 대신 짊어진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내 분노가 세상이 아니라
가장 착한 사람을 향해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생각한다.
세상은 숫자로 사람을 자를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을 다시 잇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조용한 마음이다.
그날 밤 덕훈이가 남기고 간 감자는
세상의 불공평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야 하는지를
지금까지 조용히 가르쳐 준 스승 같은 기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