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길게 드리워져 있던 시절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마을에는 여전히 폐허와 빈곤이 남아 있었다.
열 살의 나는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떤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지고,
왜 어떤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지.
그 물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시대를 살던 아이들의 공통된 질문이었다.
그때, 지구 반대편에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하얀 봉투, 낯선 우표, 또박또박 적힌 영어 이름.
나는 그를 천사라 불렀다.
하얀 얼굴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아이를 돕겠다고 나선 한 남자.
그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언어도, 피부색도, 문화도 다른 어린아이와
단 한 장의 사진과 몇 줄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혈연도 아니고 제도도 아닌, 마음으로 묶인 관계.
전쟁이 가족을 흩어놓던 시절,
그는 내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첫 편지를 받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봉투를 여는 손이 떨렸다.
“사랑하는 아들아—My dear son.”
그 일곱 글자는 낯설었다.
그 무렵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듣지 못했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고, 살아남는 일이 더 급했다.
나는 그 편지를 통해 처음으로
사랑이 문장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내가 열다섯이 될 때까지
매달 1달러를 보내주었다.
생일과 성탄절에는 150센트를 더했다.
72달러. 숫자로는 작았지만,
내 삶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나를 울린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피아노 조율사였다.
가방 하나를 메고 집집마다 다녔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그 고백을 읽으며 나는 한참을 편지를 내려놓아야 했다.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가운데서도 내어주는 사람.
그 존재가 내 어린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이후 ‘Love’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되었다.
Donald Hoyer.
그 이름이 있는 곳을 향해
내 마음은 늘 기울어 있었다.
열여섯이 되던 해,
그는 짧은 문장을 남겼다.
“나를 찾지 말거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떠나는지, 왜 찾지 말랐는지.
그러나 그의 모든 편지에 반복되던 또 다른 문장은
끝내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힘이 생기거든 네 곁의 가난한 사람을 도와라.
내가 거기에 있을 테니.”
그 말은 단순한 당부가 아니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다시 사랑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한 시대가 남긴 조용한 명령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그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잠시도 망설이지 않으려 애쓴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채,
이름을 앞세우지 않은 채.
그의 약속을 믿는다.
사랑이 필요한 자리마다
그는 여전히 먼저 가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