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안의 봄꽃

by 포도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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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후원자의 지원이 끊기던 해,

나는 진학을 포기했다.

풋내가 채 가시지 않은 나이에

세상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기댈 틈을 찾지 못한 나는

이웃에게 돈을 빌려 리어카를 장만했다.

화덕과 드럼통을 잘라 만든 철판을 싣고

거리로 나섰다.

이스트의 비율도 몰랐다.

며칠은 반죽이 질거나 퍽퍽해

제대로 부풀지 않았다.

호떡 장사는 그렇게 서툰 첫걸음으로 시작되었다.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할 나이,

나는 여고 앞 길모퉁이에 섰다.

2월의 바람이 포장을 세차게 흔들었고

개학 전 교문 앞은 적막했다.

포장은 나를 가려주는 투명한 벽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어른의 흉내를 냈지만

수업 종이 울릴 때마다

달군 철판 위에 내 학창 시절이

함께 구워지는 듯했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포장을 뚫고 들어와

내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밀가루에도 강력과 중력이 있다는 것을.

흑설탕과 황설탕의 맛이 다르다는 것도.

한 달쯤 지나자

호떡은 제법 모양을 갖추었다.

하지만 팔리지 않은 것들은

밥통 속에서 서서히 굳어갔다.

벽돌처럼 단단해진 호떡이 쌓일수록

마음 한쪽도 함께 굳어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한 여학생이 나타났다.

“가장 딱딱한 걸로 주세요.”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처음엔 들킨 줄 알았다.

내가 팔지 못한 것들을

그녀가 눈치챈 것 같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굳은 호떡이 그녀의 입에서

‘딱’ 하고 부서질 때마다

미안함이 먼저 올라왔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말랑한 것을 놔두고

굳은 것을 고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왜 이런 걸….”

내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더 맛있어 보여서요.”

그 말속에

나는 배려를 읽었다.

그녀가 사주지 않으면

남을지도 모를 호떡을

기꺼이 선택해 준 것이다.


찬바람 스미던 리어카 안에서

그 한마디는

그 어떤 난로보다 따뜻했다.

다음 날부터

뒤꼍 울타리에 핀 봄꽃을 꺾어

호떡 옆에 세워두었다.

그녀에게 건네고 싶었지만

끝내 건네지 못했다.

저녁이 되면

연탄가스에 지친 꽃들이 고개를 숙였다.

시든 꽃을 치우며

말하지 못한 마음도 함께 접어 넣었다.


5월이 오고

날이 따뜻해지자

호떡 장사는 기울기 시작했다.

그 학생도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세월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호떡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리고 늘 가장 굳은 것을 고른다.


아주머니는 묻는다.

“왜 그런 걸 고르세요?”

나는 웃는다.

그 시절

리어카 포장 안에서

굳어가던 내 마음을

누군가 먼저 데워주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첫 장사.

열등감과 수치심을 견디는 법을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청춘은 짧았고

봄꽃은 시들었지만

‘딱딱한 호떡’ 하나에 담긴 배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가르쳐 주었다.


가장 귀한 배움은

교실이 아니라

길모퉁이 포장 안에서

철판과 함께 달궈지고

굳어지며

내 안에 남았다.

나는 지금도

가장 굳은 호떡을 고른다.

그때의 따뜻함을

다시 한번 씹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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