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대었던 아펜셀라 어린이회는 굶주림 속에 있던 아이들을 살리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세워진 단체였다.
후원의 손길은 주로 미국 교회에서 왔다. 낯선 나라의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우리에게 사랑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하나 있었다.
언어였다.
각 지부에는 번역가가 있었다.
우리가 쓴 편지는 그들의 손을 거쳐 바다를 건넜다.
한 번 제출된 편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잘 전달되었겠지’ 믿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적어도 내게 선생이란,
삶의 본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 믿음은 한 줄의 문장으로 무너졌다.
나에게는 5년 동안 부자(父子)의 인연을 맺어준 후원자가 있었다.
파란 눈의 천사. 그는 매달 1달러를, 생일이면 150센트를 보내주었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동전이었겠지만,
내게는 하루의 허기를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생일 축하금을 받은 날, 나는 공책 몇 권을 사고 남은 돈으로 빵을 샀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빵을 나누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함께하는 생일’을 가졌다.
갓 구운 빵의 온기와 웃음이 손끝에 오래 남았다.
기쁨을 숨기지 못해 편지에 150센트의 사용 내역을 자세히 적었다.
공책 값, 빵 값, 그리고 감사의 말들. 진심을 몇 번이고 덧붙였다.
그러나 내 편지는 그대로 가지 않았다.
번역가는 편지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You sending 150 cents such a small amount of money does not help this boy at all.”
나의 감사는, 나도 모르는 사이 모욕이 되어 날아갔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동안 네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구나. 150센트는 미국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는 돈이란다.”
왜 사과를 하지.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 편지에 다른 손이 닿았다는 것을. 후원자는 상처를 입었고,
나는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인연은 끊어졌다.
일 년쯤 지났을까. 나는 서툰 영어로 직접 편지를 썼다.
도움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생일에 친구들과 빵을 나눌 수 있었다고.
어른이 되면 꼭 은혜를 갚겠다고.
한참 뒤 답장이 도착했다.
“네 글은 엉망이지만 뜻은 이해한단다.
그 추신이 네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찾지는 말거라.
은혜를 갚고 싶다면 네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렴. 내가 거기에 있을 테니.”
짧은 문장이었지만,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생각한다.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이며, 지식을 쌓는 목적은 무엇일까.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도, 그것이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면
결국 상처가 될 뿐이라는 것을 나는 어린 나이에 배웠다.
파란 눈의 천사는 돈만 남기고 간 사람이 아니었다.
나눔이 순환하는 방향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었다.
150센트에서 시작된 기쁨은 번역가의 어둠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나는 믿는다. 그가 그 자리에 함께 있다고.
나는 오늘도 그렇게, 받은 은혜를 조금씩 돌려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