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넘어져서 다친다. 비유가 아니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달려가기 전에 미래가 앞에 있는 게 맞는지부터 곰곰이 다시 검토해야 한다. 만약 미래가 뒤에 있다면, 미래를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뒤로 달려가야 하고, 아무래도 뒤로 달려가다간 넘어져서 다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미의 케추아어(Quechuan) 문화권에서는 미래는 등 뒤에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경험하지 않은 미래는 보이지 않으므로 등 뒤에 있는 것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거는 눈앞에 있다. 과거는 이미 경험한 것이라서 잘 보이는 것, 눈앞에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1] 따라서 이 언어와 인식 체계에서는 미래는 뒤에 있는 것이 맞다.
한국어 화자인 나는 "미래로 달려가기"라는 비유에서 진취적이고 추진력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읽어낸다. 하지만 케추아어를 쓰는 1,100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말이 되지 않거나, 말이 되더라도 조금 다른 의미로써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 마치 내가 "미래로 후진하기"를 읽으면 타임머신이 달린 지게차가 후진 경고음을 내면서 포탈로 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처럼.
Kim [------] 씨의 우편이 내게 배달된 것도 비슷하게 이해해 볼 수 있다. Kim [------] 씨가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우체국은 이분에게 전달되었어야 했을 각종 보험 서류를 나에게 보냈다. 이분과 나는 주소가 한참 다르지만, 미국 우체국은 주소가 아닌 이름을 보고 우편을 분류하나 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가 등 뒤에 펼쳐질 수도 있는 만큼, 미국 공무원들에겐 Kim [------]와 내 이름이 같을 수도 있는 것이렷다. Alice나 Elise나 나에겐 둘 다 앨리스니깐.
미국 우체국에게. Kim [------] 씨의 보험 서류는 열어보지 않고 잘 반송하겠습니다. 저는 준법 외노자이고, 통신비밀보호법이 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원래 있던 곳"에도 그런 법이 있습죠. 그런데 Kim [------]씨의 보험 서류가 저에게 왔다면, 제게 왔어야 할 제 보험 서류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아니요, 미국 정부 기관에 불만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네, 모르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아서 따로 잘하겠습니다. 옙.
[1] 삶의로서의 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