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여름, 23살, 연남동과 만리동을 오가며 쓴 글
1.연남동
오전 1시 22분, 드디어 버스를 탔다. 맥도날드에서 나오고 50분만이었다. 새벽에 잡히지 않을 택시나 기다리며 비 맞고 있는 꼴이 꼭 내 인생 같다. 는 생각이 들 즈음에 택시 하나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다른 택시들은 모두 [예약] 표시가 떠 있었다.
“택시---요?”
“네?”
5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택시기사가 창 한쪽을 내리고 뭔가를 물었다.
“택시 부르셨어요?”
“네?”
“택시 부르셨어요? 어디 가세요?”
“서울역이요.”
“아하, 택시 안 부르셨어요?”
그러곤 다시 창을 올리고 가버리는 거였다. 가뜩이나 20분 째 택시가 안 잡혀 서교동 쪽으로 걷고 또 걷는 중이었는데, 빈정이 상했다. 기껏해야 3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예약]받으려는 택시는 한 대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택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호출 어플을 삭제해버리고 그냥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다. N62번:28분 후. 심야버스는 이미 만석이었다.
나도 알아 이런 얘기 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거, 연예인 얘기나 존나 하다 가는 편이 낫다는거
꼭 그런 건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애 말이 사실이다.
바라는 거 없어 고쳐달란 것도 아냐 그냥 들어줄래
모르겠어 무슨 얘기를 할건데?
홍대입구 9번 출구에서 쭉 직진해 나와 상상마당 들어가는 쪽 사거리에 있는 맥도날드는-24시간이었다. (9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있는 버거킹만 24시간인줄 알았는데.) 그게 오늘 알게 된 하나의 진실이었다.
꼬박 6년만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1, 2년 동안은 여러 친구들 사이에 섞여서 그 애를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원래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지만, 빈집에 배달 올 택배가 하나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나야 태영이
누구세요?
3학년 8반 태영이야 나 기억하지?
우리가 뭐 초여름 데이트나 즐기러 나온 연인들도 아니고, 토요일 밤에 단둘이 연남동 공원에서 만나자니 무슨 바보 같은 객기인가 싶었다. 연남동이 ‘핫’해진 건 이미 한참 전이고, 지금 거기 가봐야 오붓하게 대화할 분위기는 못 된다는 이야기 역시 하려다 말고, 그래 거기서 만나자고 대답했다. 연트럴파큰지 경의선숲길인지 하는 곳에 도착해 그 애를 만나고 나서야 그애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장소를 골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길 위로 한없이 늘어서 있는 인간들을 지나 그저 걷고 또 걷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어느 한 곳에 앉아 진중하게 서로의 눈을 마주볼 필요도 없이, 앞이나 바라보며 얼기설기 대화를 이어나가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던 것이다. 공원을 뒤덮은 젊은이들의 소음이 우리 사이의 침묵을 간단히 메꾸어주고, 나무로 가득 찬 전경이 불안한 시선을 거두어갔다. 11시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디 밥집이라도 들어갈까’하고 말했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그럴듯한 가게는 모두 영업을 마치고, 건너편에 떡하니 자리 잡은 맥도날드가 눈에 띄었다. 24시간이라고 하니 안심이었다. 그애가 1600원짜리 미디엄사이즈 프렌치프라이를 사줬다. 십원짜리 동전까지 탈탈 털어서.
그애에게는 돈을 부쳐주지 않는 아빠가 있고 혼자 남매를 키우는 엄마가 있고 말 안 듣고 나돌기만 하는 동생이 있고 매일 아홉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은 빚이 있고 마련해야할 다음 학기 생활비가 있고 내지 못해 휴학한 등록금이 있고 얼마 전에 죽은 할머니가 있고 얼마 전에 죽이고 싶었던 전애인이 있고 얼마 전에 죽으려고 했던 자신이 있고, 돈이 없고.
그게 그날 알게 된 몇 개의 진실이었다. 그러니까 요지는 멍청한 동생이 사고를 쳐서 돈이 좀 필요하다는 거였다. 밥이고 자시고 지금 돈이라곤 한 푼도 없어서 그래서 그냥 공원에서 보자고 했다는 거였다. 매장 안은 초여름 습기를 쫓기 위해 에어컨이 과도하게 틀어져 있었다. 젖은 어깨 위로 찬바람이 내려앉을 때마다 그애는 몸을 떨며 코를 훌쩍였다. 감자튀김은 곧 눅눅해졌다. 이런 식으로 동창들 한 명 한 명 찾아가 감자튀김을 사주는 걸까? 1600원짜리 감자튀김을 사주면서 그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른 애들은 뭐라고 말했을까? 다른 애들은 왕복차비 3000원과 감자튀김값 1600원을 합친 것 이상의 대답을 들려주었을까?
졸업전시회가 코앞이었다. 몇 년간 겨우 모은 적금을 깨서 근근이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사람이 존나 찌질하고 인색해진다. 밥 약속도 거진 건너 뛰고, 영화나 커피는 말할 것도 없다. 거지같다 거지같다 늘 말로만 하다가 실제로 거지같이 살게 된 지 반년 쯤 되었다. 그래서 미디엄사이즈 프렌치프라이 하나를 시켜놓고 두 시간 째 맥도날드에 앉아 있는 꼴이 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뭔가를 사주기는 싫었다.
20만원 정도는 빌려줄 수 있어.
어쨌든 그게 최선이었다. 주제에도 안 맞는 동정심이나, 가져 본적도 없는 우정 때문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숙명 같은 것이 짜증나서였다.
고마워 너밖에 없어 꼭 갚을게
그러나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성인이 되고 그애를 만난 것도 오늘이 처음이다.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다.
사거리 안쪽 길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어딘가 멀리로, 적어도 30분 이상의 거리로 돌아가는 어린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택시를 잡고 있었다. 비에 젖은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침묵을 죽여주던 이들은
심야버스는 이미 만석이었다.
2.만리동
간만에 폭우가 쏟아졌다. 집에 돌아와 젖은 책들을 하나씩 펴서 냉장고에 넣으면서 10년전의 여름을 생각했다. 울퉁불퉁해진 교과서를 들고 학교에 갔을 때 책을, 냉장고에 넣어서 말리면 구겨지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던 게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알려주었어 나에게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거야
누군가도 아직 살아 있을 거고 살아서 이 비를 또 맞고 있을 거고 또 책들을 냉장고에 넣고 있을 거야
베란다에 널어놓은 마음이 다 마를 때까지 나는 치지도외했다. 너덜너덜해진 것들을 접어서 나프탈렌도 없이 옷장 아래에 넣어 두고 다시는 찾지 않았다.
어디서 볼까?
네가 이쪽으로 와
알겠어
자이 입구로 와 산책이나 하게
알겠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 번호 왜 알려줬어? 그러자 걔가 하도 간절하길래,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돌아왔다. 아니 씨발 알려줄거면 부자새끼들 번호나 알려주지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또 미안하다고, 그냥 지나치기가 좀 그랬다고 하는 말이 돌아왔다. 사실 딱히 네가 미안해야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누가 미안해야 하지? 그애가? 아니면 내가? 어쨌든 딱히 누가 미안해야만 할 일은 아니었다.
서울역 만리동 센트럴자이가 완공된 지도 1년이 지났다. 만리동은 서울의 가장 낡고 오래 된 동네 중 하나였는데, 따개비같이 붙어있는 낡아빠진 집들을 다 허물고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왔다. 어쨌든 나에겐 좋은 일이었다. 반전세의 월세값이 살짝 오르긴 했지만, 남의 아파트 단지 공원을 공짜로 마구 사용할 수 있는데다 (비록 건너편이긴 하지만)미관상으로도 좋다. 아파트 단지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인도가 4배나 넓어졌고, 가로수가 2배는 더 심어졌다. 전국에 육교철거령이 내려진지 10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던 만리동 고개의 육교도 곧바로 철거되고, 횡단보도가 4개나 더 생겼다. ‘동네에 카페가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파트 상가 안에 카페가 3개 생겼다. 베스킨라빈스와 뚜레쥬르, 올리브영과 치과, 동물병원, 체인 헤어샵이 들어왔다.
센트럴자이는 우리 집과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나는 종종 그 아방궁에 딸린 공원으로 들어가 심심파적했다. 설렁설렁 산책도 하고, 도시조경을 즐기며, 폭포도 구경하고, 수국 향기도 맡아보고, 설치 된 운동기구에서 몸도 좀 풀고, 주민용 도서관에도 슬쩍 기웃거린 후 ‘여기가 원래 이런 동네였나, 역시 돈이 최고구만’하는 생각을 두어 번 쯤 하고 나면 저녁 산책 시간도 알맞게 사라져있었다. 그러니까,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역 노른자땅의 미관을 해치는 서계동 지구 철거하라’와 ‘서울역 센트럴자이 신입주중 28평 전세 10억’이 공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내 방 침대에 누우면 창문 모서리 끝에 커다랗게 ‘Xii’가 보인다.
내 방은 언덕 내리막길 쪽에 있어서 얼핏 보면 반지하로 착각하기 쉽지만 반지하는 아니다. 물론 사람들 발소리와 말소리가 너무 잘 들리고, 밤마다 술을 마시고 욕지거리를 하는 동네 공장 놈들의 고성은 말할 것도 없고, 집 앞 봉제공장에 옷감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는 새벽 3시에도 왔다갔다 해대면서 잠을 깨우고,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일도 부지기수라 여름에도 창문을 잘 열지 못한다. 이제는 시퍼렇게 빛나는 ‘Xii’간판이 내 창문 꼭대기에 보이기까지 하니, 창을 열기가 더 싫어졌다. 그래도 너무 더운 날이면 창문을 열어 놓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저 사람들은 언제부터 부자였을까?’같은 생각이나 해보는 거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니까. 나도 다른 애들 번호는 모르고
알았어
30분째 센트럴자이의 눈부신 도시조경을 유유자적 하고 있었다. 널따랗게 뚫린 단지 내 도로부터 시작해서, 검은색과 쥐색이 번갈아 놓인 패턴의 인도 타일, 수돗물을 끌어 쓰는 폭포와 그 옆의 분수대,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유리문, 버드나무 안쪽에 세워져 있는 작은 나무 정자, 돌계단 위의 테라스와 우레탄이 깔린 놀이터. 심지어 [분리수거장]이란 팻말이 달린 쓰레기 임시 수거장 까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동네에선 다 불어터진 봉투를 전봇대나 대문 옆 아무데나 던져 놓는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나저나 왜 맨날 여기 공원에서 만나자고하냐 어디 카페나 가자
그거 알아?
뭐가 또
욕조와 소파가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어
살 수 있어 언젠간 살 수 있겠지
바보같긴 우린 공원이 있는 동네엔 평생 못 살거야
그애를 다시 떠올렸다. 20만원을 받아들고 고마워서 죽으려고 하는 그애의 얼굴을, 그리고 10년 전의 여름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애가 말한 거였지, 책을 냉장고에 넣으라고 맞아 그애가 말한거였어 그애가 그날 점심을 먹으면서 그런 말을 했던거야. 어서 집에 가서 욕조에 몸 담그고 씻고 싶다고 하는 애들 얘길 듣고 욕조가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그애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소파가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꿉꿉하게 웃었다. 누군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된 우리는 그때를 잃고 또 무엇을 얻었나, 20만원을, 감자튀김을, 심야버스를, 싸구려 녹음과 헐값의 침묵을, 아무나 올 수 있어서 아무나 가는 연남동의 닳아빠진 공원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