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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Mar 14. 2018

어느 날, 일곱 시간 반

내 삶에 좀 더 긍지를 갖게 되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계절 문턱, 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그러나 마음을 휘도는 은은한 온기 덕에, 그리 춥지 않았다. 우리는 일곱 시간 반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겨가며. 사람들을 더 부르기도 했고. 마지막 2시간은, 말 한 마디 하려면 잠시 기운을 모아야 할 정도로 기진맥진했다. 온 정신을 다 쏟아 부었다. 하지만 혼곤한 가운데에도, 선명한 파노라마가 재생됐다. 그리고 이야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묘하게 밝아지던 얼굴.

 “고마워, 잘 가. 다음에 또 봐!”

활짝 웃으며 건네던 작별인사.

‘이런 삶도 과연,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되는구나.’

 유쾌하게 웃었다. 몹시 즐거웠다. 탈진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그시 미소 지으며 감사 기도를 올렸다.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내 마음은 왜 이럴까?’
 ‘나는 누구일까?’
  ...


 ‘자아’가 생기고, 사춘기에 접어들며 시작한 고민.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며, 훌훌 다 털고 떠날 마지막 순간까지도 계속할 고민이다. 내 삶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글쓰기도, 사실상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시작했다. 심상(心狀-마음속 이미지)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중 가장 끌리는 도구가 글쓰기고.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면 이 문제는 해결되고, 다른 고민을 할 줄 알았다. 열아홉에서 스물은 퍽이나 다를 줄 알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그 안에서 ‘큰 배움(大學)’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스무 살은 진즉 지나고, 대학교 생활도 거의 끝자락인데, 아직도 모르겠다. 아주 일부분을 알 뿐. 가끔 벅차게 다가오기도 한다. 평생 고민해도 다함이 없을 거대한 작업임을 깨닫고 인정한 뒤에는, 좀 홀가분해졌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하는 자기탐구.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혼자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건넨다. 그게 곧 그 사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으면, 많은 시간을 ‘나’를 탐구하는 데 쓴다.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들여다본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복기한다. 삶의 방향을 생각한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돌이켜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 상처가 남긴 아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끊임없는 궁금증도 있다. 존재를 알고자 하는 깊은 갈망에서 비롯된.

 솔직히, 전공공부보다 여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균형을 맞추려 애쓰지만, 어느 샌가 다시 나를 탐구한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 희미해진다. 어쨌든 지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사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학우가 거의 없다. 나를 바꾸려 해보지만, 금세 되돌아간다. 점점 더 고립된다.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런다. 그 까닭에 많이 위축됐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이렇게 몇 년을 지내왔다.

 수업이 끝나면 빠르게 안식처로 돌아와 다시 자기탐구에 몰두한다. ‘돈도 안 되는 이런 걸 왜 하고 있을까, 나는..’ 쭈뼛쭈뼛, 웅얼거리곤 한다. ‘너무 자기만족하며 사는 거 아냐? 이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괜히 다그쳐본다. 그래도 끊임없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나. ‘이 탐구가, 반드시 쓸모가 있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야!’ 깊은 데로부터 온 마음에 메아리치는 소리.



몇 시간에 걸쳐 마음을 더듬어가다.

 친구는, 지난 몇 달 간 마음고생이 심했다. 삶 방향을 다시 잡을 만큼 극심한 격동이 있었다. 굵직한 사건이 여러 개 있었다. “이젠 좀 나아졌어. 그래서 만나러 왔어.”라고 했지만, 여전히 힘들어보였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내고, 듣고. 듣다가 질문하고, 혹은 대답하고.


 말로,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중간중간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오른 이미지들. 너무나도 선명해서, 심지어 말을 가로막고 묘사한 '마음 이미지'들. 몇 시간에 걸친, 마음을 더듬어가는 작업. 마치 광부가 묵묵히 갱을 파듯, 의사가 환부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듯. 끈덕지게 해나갔다. 그간 골방에서, 길 위에서, 혼자만의 시간 등등에 골몰했던 ‘자기탐구’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마음을 더듬었던 자욱과, 그 과정에서 직면한 감정 하나하나가 빛이 났다. 내가 더듬었던 마음 만큼만 이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공감할 수 있었다.


 대화 시간 대부분에, 이 친구의 마음결이 느껴졌다. 완전히 다 알지는 못했지만, 느껴졌다. 피하거나 애써 덮어둔 감정을 짚어주기까지 했다. 끊임없이 질문이 나왔다. 질문했다. 마음에 관해.


다른 이에게 생기가 되다.

 삶속에서 늘 나만을 대상으로 하던 작업인데, 이제는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평소에 정성 들여 마음을 들여다본 시간이 거대하게 쌓여, 생기(生氣)가 됐다. 다른 이의 마음을 '살리는 에너지'가 됐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야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묘하게, 점차 밝아지던 얼굴.

 “고마워, 잘 가. 다음에 또 봐!”

 더할 나위 없이 활짝 핀 표정과 어우러진, 작별인사.


 '아아. 이런 삶도 과연,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되는구나..'

 내 삶에 좀 더 긍지를 갖게 된 어느 날, 일곱 시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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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자님께 열려 있습니다 ^^


사진 출처

http://pixabay.com  (이하 작가명)

표지 및 마지막: Myriams-Fotos

1번째: FelixMittermeier

2번째: Pexcels

3번째: Couns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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