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색의 막걸리
며칠째 보슬비가 내린다. 아침 우유 달라는 고양이들의 작은 소란에 눈을 뜨고, 파우더 우유를 미지근한 물에 타서 고양이들의 작은 그릇에 담아주고, 내가 마실 커피를 내리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그러나 또 다른 아침이다. 오늘 아침의 쌀쌀함에 내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듯 카이도 그렇게 푹 쌓여 있고 싶은지 내 허벅지 위에서 몸을 잔뜩 말고 내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더니 이제는 잠을 잔다.
점심으로 먹을 상추, 아루굴라 등 몇 가지 초록 이파리와 오이 하나를 따 놨다. 저녁거리가 될 랜틀을 물에 담가 놨으니 저녁나절에 애호박 하나를 따서 썰어 넣고 랜틀죽을 만들 것이다.
다섯 그루의 애호박은 하루에 하나꼴로 잘 자란 애호박을 내게 선물한다. 기특하고 고맙다.
아, 이런저런 욕심들을 떨궈버리고 나니 삶이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다.
벌써 초 하루가 지났으니 보름달이 뜨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둥그런 은빛으로 밤의 대지를 밝히는 보름달을 보고 있자면 노래가 절로 나온다. 노래 한자락 하고 나면 달의 그 아름다움과 함께 나눠 마실 예전에 좋아했던 매실주나 아님 다른 한국 술이 한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한다.
그리하여 급기야 막걸리를 만들 결심으로 키토(Quito:에콰도르의 수도)에 사시는 한국 할머니로부터 누룩을 사 왔고 밥을 말려(막걸리를 만들 때 왜 밥을 말려야 할까요?) 누룩을 넣고 물을 넣고 막걸리를 만들었다. 맛은 제법 막걸리 맛이 나기도 하지만 색이 거의 커피색이다. 누룩 색이 거무스름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지만 누룩의 색깔이 그러했던 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을 텐데 왜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나 또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동네 가계에서 주전자에 사들고 다녔던 그 막걸리는 우윳빛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이번 달에 뜨는 보름달과 커피색의 막걸리를 나눠 마실 것이다.
아, 이리하여 나는 종교인은 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