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속지 말아야할 것들

마술이 거짓이면서도 신기한 이유

by 이건

최근에는 눈으로 봐도 미끼지 않은 신기한

마술들이 더욱 많아졌다.

어릴 때 보았던 눈앞에서 무언가가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마술을 넘어 이제는 정말

마법과도 같은 마술의 기술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과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마술’을 걸며 살아간다.

“이건 안 돼.”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해.”


그건 물리의 법칙이 아니라,

마음의 법칙이다.

어릴 적에는 세상이 넓어 보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은 점점 좁아진다.

그건 세상이 작아진 게 아니라,

우리가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영역’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


마술사가 관객의 시선을 한쪽으로 끌어당겨

다른 손으로 진짜 마술을 보여주듯,

삶도 그런 식으로 우리를 속인다.

눈앞의 불안, 실패, 손해에 집중하느라

진짜 중요한 변화의 순간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마술이란 결국 ‘믿는 자를 위한 공연’이라는 것이다.

의심만으로는 박수를 칠 수 없고,

냉소만으로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듯이

세상을 너무 정확히 이해하려 들면,

그 속의 ‘작은 기적들’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시간이 한참 흐른후에

무언가를 후회한다.

그리고 그 후회는 했어야 했는데...가 따라붙는다.

말인즉 할 수 있다를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과거형이 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종종 “고정관념”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유연한 존재인지 잊는다.

그러다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상처 앞에서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 단정해버린다.

그렇게 스스로의 능력에 시한부 판정을 내린후

자신의 병이 오진이었음을 뒤 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진짜 마술은 그 단정 이후에 시작된다.


어쩌면 인생의 ‘난관’은

우리를 꺾기 위한 벽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믿지 못한 능력을 꺼내기 위한 무대 장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