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캠핑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시작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화려한 장비도, 감성적인 음악도 없었다.
그건 차라리 생존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그날은 영하 10도가 넘던 한겨울이었다.
암투병 중이신 엄마를 뵙기위해 새로 이사한 한적한 시골로 향했다.,
인근에는 다른 집도 없었다. 덩그러니 과수원과 낮은 산몇개만
있었고, 집주변은 적막한 겨울을 드러내듯이 꽁꽁 얼어붙은
나무와 말라버린 낙옆들 뿐이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말을 하지 않고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걸자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엄마 지금 못들어가. 대여섯시간은 있다가 들어갈 수 있어.
그냥 집에 갈까 했지만, 그래도 그냥가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어떻게든 집안에 열린 창문이라도 없는지 열어보려 했지만,
아버지의 철저한 방검덕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뒤
처음에는 착시인지 아니면 나의 시력문제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다가오고 있던건 귀여운 송아지가 아니라 송아지만한 도사견 한 마리였다.
목줄이 풀려 있었고, 눈빛은 매서웠다.
나는 개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것도 개 나름이었다.
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종이 섞여 있고, 성향이 어떠한지도 알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덕분에
공포심이 곱하기가 되었다.
도사견 – 오로지 싸움을 위해 몇 대에 걸쳐 개량시킨 교배종
가끔 그런날이 있다.
살다보면 하늘이 원망스러운 날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 대고 욕을 하고싶을 정도의 절망스러운 날.
그날이 딱 그날이었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 덕분에 나는 원시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야생에서 느껴야만 했던 생명의 위협을 그렇게 체험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한가지
불!
그 시간은 오후였지만,
겨울 해는 금세 저물어
순식간에 세상은 어둑해졌다.
찬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에서 낙엽과 마른 가지를 모았다.
작은 불씨 하나를 만들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얹었다.
처음 피운 불이었다.
불이 살아오르는 그 순간,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다.
불빛이 내 얼굴과 손끝을 비추자
그제야 몸이 아닌 마음이 먼저 녹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오후였지만,
겨울 해는 금세 저물어
순식간에 세상은 어둑해졌다.
찬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에서 낙엽과 마른 가지를 모았다.
작은 불씨 하나를 만들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얹었다.
처음 피운 불이었다.
불이 살아오르는 그 순간,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다.
불빛이 내 얼굴과 손끝을 비추자
그제야 몸이 아닌 마음이 먼저 녹기 시작했다.
집주변에 있던 장독대에 눈이 갔다.
몇몇 장독을 열었을 때, 쌀, 귀리, 그리고 소금, 같은
것들이 있었고, 결국 항아리 속에 있던 고구마까지
발견해냈다. 나는 그것을 불속에 던져 넣었다.
한손에는 다가오면 쫓아버릴 단단한 나무몽둥이
까지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고구마가 익고 서둘러 반으로 쪼개었다.
모락모락 김이나는 고구마는 한눈에 봐도
먹음직 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고구마를 마셨고,
심지어 주변에 있던 양철냄비에 눈을 녹여
솔잎을 따다가 즉석에서 차까지 끓여 마셨다.
엄청난 만족감과 행복감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고구마를 녀석에게 던졌다.
그 녀석은 잠시 냄새를 맡더니
조심스레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도사견은 그 불빛 가까이에 조심스레 다가왔다.
서로를 경계하듯 바라보다가
나는 손짓을 하며 녀석에게 고구마를 계속
조금씩 던져주었다.
우리는 가까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도
그따뜻한 온기가 느끼고 싶어서 였는지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불빛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묘한 온기가 생겨났다.
서로 아무 말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같은 마음으로 불을 바라봤다.
그건 생존의 불이 아니라,
서로의 추위를 녹이는 불이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흘렀다.
불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녀석이 다가오면 휘두르려 했던 몽둥이는
자연스레 장작속에서 타들어가며 우리의 몸을 녹여주고 있었다.
어느새 녀석은 이전보다 더 가깝게 내 주변에 앉아 있었고,
때로는 내 눈을 마주치며
꼬리를 흔들지는 않았지만, 지긋이
눈을 꿈뻑그렸다.
그 작은 움직임이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위로처럼 느껴졌다.
도사견은 조용히 일어나
눈발이 내리는 산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끝까지 바라봤다.
눈 속에 녀석의 발자국이 점점 사라질 때까지.
그날 이후 나는 캠핑을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으로서의 캠핑.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보다,
스스로의 마음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
그해 봄,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상한 일이야. 집 근처에 도사견이 한 마리 있더니
며칠째 집 근처를 지키고 있더라.
그리고 창고주변에서 새끼 일곱 마리를 낳았어.”
엄마는 웃으며 덧붙였다.
“사람도 피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한 달쯤 지나니까 새끼들 두고
조용히 사라졌어.”
사람들은 캠핑을 ‘여유’라고 말하지만
내게 캠핑은 ‘회복’이었다.
불 앞에서 마주 앉으면
세상의 시끄러움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불빛은 늘 똑같이 타지만
그 불을 바라보는 마음은 매번 다르다.
지금도 가끔 불을 피우면
그날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그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내 삶을 바꾼 장면이었다.
그 녀석 덕분에 나는 알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불은 장비나 나무가 아니라,
사람과 생명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순간에 피어난다는 것을.
이제 나는 캠핑장에서 불을 피울 때마다
조용히 그날의 문장을 마음속에 새긴다.
“그 겨울의 불은 우리를 참 따뜻하게 했다.”
아마 그 녀석은 길 위에서 수없이 추위를 견뎌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우리 둘 다 처음으로 따뜻함을 나누었다.
그리고 봄이 오자,
그 따뜻함은 새로운 생명으로 돌아온 셈이다.
엄마는 그때 그 새끼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돌봤다.
작은 상자에 담긴 일곱 마리 강아지들이
잠든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셨다.
사진 속에서 나는
묘하게 익숙한 눈빛을 보았다.
불빛처럼 부드럽고,
어딘가 세상을 떠돌다 다녀온 듯한 깊은 눈동자.
그날 이후,
나는 캠핑을 할 때마다
항상 고구마를 챙겨간다.
불을 피우면 자연스럽게
그 녀석의 자리를 남겨둔다.
내 옆, 불빛이 가장 따뜻하게 닿는 자리.
어쩌면 그 도사견은
그날 나를 지켜주러 왔던 걸지도 모른다.
외로운 사람과 외로운 생명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리고 잠시의 인연이
서로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그 봄 이후,
나는 ‘캠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불빛속에서 나를 계속 바라보던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나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잠시 쉴수 있음을 허락한 사람이었기에
“괜찮아.
사람들은 자꾸 불을 피우려 애쓰지만, 진짜 따뜻함은 이미 네 안에 있었어. 다만 그걸 네가 잊고 있었을 뿐이야.”
뜨거워 질 필요없다. 따스함 이면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