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4일

by 부러진 연필

5844일, 어느 하루도 기쁘지 않은 날은 없었다.

아니 슬프고 힘든 날은 있었지만 견디고, 지내고 나면 더 기뻤어. 그래서 더 좋았다.

매일 너의 얼굴을, 너의 작은 몸을 기억하려고 보고 또 쳐다봤었지.


원치 않던 시간에 눈 감고 세상으로 나왔던 그때부터, 해뜨기 전 불안한 초겨울 어두운 새벽까지

난 너의 얼굴과 몸을 기억하려고 한다.


책상 위에 놓인 너의 손수건에서, 이제는 신지 않는 신발에서 너의 모습이 보인다.

시간이 겁 줘 서둘러 먹고 떠난 아침 식탁에 남은 너의 수저와 밥그릇에 너의 모습이 보인다.

오후 햇빛이 따뜻할 때, 너의 등과 손에, 눈에 빛이 딱 나만큼만 따뜻하길 빌어본다.


시간이 지나면 멀어질 걸 알아서 무서울 때도 있지.

우주에 있는 두 천체처럼 조금만 멀어져도 당기는 힘이 너무 약해질까 봐.


하지만 나는 빛이 될 거야.

내가 아는 어느 공간에서도 변치 않는 빛이 되어 너를 비출 거야.

언젠가 네가 단단하게 세상을 딛고 서 있을 때

너의 등과 손에, 눈에 빛이 따뜻하면 나라고 생각해.


세상과 시간의 끝까지 너를 비추는 빛이 되고 싶다.


너의 등과 손에, 눈에 언제나 그 빛이 따뜻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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