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주식에 집중해 투자를 시작한 지 만 3년이 약간 넘었다. 2020년 코로나 이후 급격히 늘어난 통화유동성 및 재정부양으로 발생했던 증시 호황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주식시장으로 내 대부분의 자산을 넣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최소 자산의 변동성을 이겨내며 보유한 경기도 소재의 내 집 한 채를 제외한 모든 자산은 지금 집중하고 있는 1~2 종목의 기업 주식에 투자를 할 것이다.
주식 투자는 2015년부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직업군인으로서 생활을 하기도 했고, 집안 가풍상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암묵적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돈을 벌면 어디 변두리라도 내 집을 먼저 사야지, 주식이나 그 외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투기이며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다. 2020년 정확히 말해 2020년 말 이전까지는 국내 기업의 주식이 대부분이었고, 남들이 말하는 테마주나 내가 계약직 신분이나 소속된 회사의 자회사 등의 주식을 매수했었다. 공부? 그런 건 하나도 없었고, 그냥 누군가의 말대로 오감투자와 시황 눈치보기에 따라 '사팔사팔'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예를 들면,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면 아침에 대기업 주식을 사고, 며칠이 지나 안보리스크 상황이 좀 가시면서 주가가 일부 회복하면 1~5% 내외 수익을 보고 팔아치우기를 반복하는 정도였다. 다행히, 돈을 잃지는 않았다.
2021년 봄부터 2022년 말 겨울까지는 정말 지독하리만큼 힘든 시기였다. 그렇다고 2023년 10월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힘들지 않다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마음만은 편안하다. 내가 매일 팔로업하고 기업공시를 보고 기업이 제시한 청사진의 로드맵이 매일, 매주, 매월, 매년 얼마나 시행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주가가 떨어지면 더욱 매입해 그 회사의 지분을 늘려나가고, 주가가 오르면 그 좋은 상황을 행복하게 즐기기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하는 덕에 세상의 변화를 어느 정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기업의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실물적이고 금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장기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이 굳건하게 생겨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집중투자 중인 기업이 바로 테슬라(나스닥 종목티커: TSLA)이다. 소액이었지만 첫 투자 시점부터 생각하면 벌써 이 기업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는 기간이 2020년 10월부터이니 약 3년이 다되었다. 물론, 이 기업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하는 기업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수반된 투자는 사실 창피하게도 1년이 조금 넘은 정도이며, 내 금융자산의 90% 정도(경기도 소재의 내 집 현 시세와 비슷한 정도의 투자금액)를 이 기업에 투자한 기간도 비슷하다.
누군가에게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나의 대부분의 자산이 투자된 기업이기에 매우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 그 외 국가들의 기관투자자들, 애널리스트들, 오래된 장기투자 주주들의 소식을 X(구. twitter)나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 팔로업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틀 전에 한 투자자의 글을 접했다.
그는 현재 현대자동차 생산직 직원이라고 밝혔으며, 국내 언론사에 현대차 노조 관련 내용과 현재 미국 UAW의 포드 파업 뉴스 등을 언급하면서 자신은 테슬라에 자신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해 매월 월급의 대부분을 테슬라 주식을 사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속해서 자신들의 처우를 위해 힘써주고, 정년연장에도 도 투쟁으로 힘써주어서 65세 정도의 정년근무를 하는 동안 더욱 많은 테슬라 주식을 사모으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으로 현대자동차는 자신 같은 30~40대 직원들이 적지 않기에 미래가 없다며, 한 가지 희망은 자신이 정년퇴직하는 나이까지 현대자동차가 안 망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자신이 정년퇴직을 할 때쯤이면, 자신은 테슬라 주식을 자신이 90세 넘어서까지 생활할 경제적 안정성을 가질 정도로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2.
내 주변 지인들 중에는 나이대가 굉장히 다양하다. 내가 장교로서 직업군인 생활을 하면서 부사관 등과 위계를 가지고 생활했던 탓이기도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전문계약직이라는 신분으로 연간업무량을 설정하고 흡사 프리랜서와 같은 방식으로 명확한 직급 없이 직장생활에 임하는 포지션으로 근무를 벌써 10년 차가 되어가는 이유에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함께 일하는 이들의 나이가 굉장히 천차만별이다.
이들 중에는 현재 50대를 훌쩍 넘긴 이들도 있다. 이들의 자녀들은 20대를 넘긴 성인부터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하나같이 부모 된 마음으로 자녀들 앞가림을 신경 쓰면서, 더욱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더욱 좋은 직장에 가도록 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 모든 부모가 그러한 마음일 테니 이 부분은 이상할 것이 하나 없다.
올해 몇 차례 함께 술을 마시며 긴 이야기를 나눈 동료도 몇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계약직이기에 신분이 불안하며, 매년 근로계약이 진행될 수 있는지와 연봉은 정규직 직원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최소 물가상승률은 감안해 최소 1%의 연봉인상이라도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나와 다른 부분은 이들이 우리의 미래세대인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면서 아이들의 미래 생계 걱정을 하면서, 이와 상충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함께 고민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최대 만 45세에 모든 직장생활을 그만두려는 목표로 생활하고 있다. 그렇기에 매우 치열하게 살았다. 작년까지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작가로서 역량을 키우고자 했고, 그 이전에는 다른 고연봉 전문직 회사로 이직을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금융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앞에 말한 나의 50대 지인들 중 일부는 최근 청년들의 일자리가 부족해서 중국의 탕핑족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며 걱정함과 함께, 자신들은 아직 전혀 노후준비가 안되어 있다며 계약직 신분이지만 최소 60세, 노동법이 바뀌어 65세, 70세까지 근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 말을 들었던 나는 반문했다. 성장이 정체되고 차세대 산업 성장을 위해 급격한 사양산업의 쇠퇴와 살아남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의 실물경제환경 속에서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정확하게 말해 50대 이상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계속 고수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아이들 세대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은 안 생기느냐? 고 말했다.
다들 나의 반문에 답을 피했다. 한 박사는 자신의 아이는 아직 청소년이기 때문에 고액과외 등을 투자해서 지금까지는 학업성과가 잘 따라오고 있다고 했다. 무조건 의대를 보내려고 한다고 이어서 말했다. 어차피 경쟁사회인데 일단 내 자녀만 잘되는 것만 신경을 써도 고민이 많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전문계약직 신분으로 있는 이 상황만 60세까지 일단은 유지되기를 바란다며, 그래서 더 잘할 필요도 없고 튀고 싶지도 않고 그냥 월급 받는 인생이 60세까지, 노동법이 바뀌어서 더 오래까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남들 인생까지 신경 쓸 필요 뭐가 있느냐며,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나름 명함을 누군가에게 건네면 최근에는 그 위상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식자로 취급받고 나름 존중도 일부는 해주는 박사들이다. 걔 중에는 기술사도 있고, 다른 전문자격을 보유한 이도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뭔가 희생하고 공헌하는 사회적 부채의식도 가져야 할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는 마치 사회의 기생충과 같다. 나와 내 자식만 아니면 된다는,,,.
#3.
나는 아직 미혼이다. 마음 상태는 이제 지쳐 비혼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한 번의 연애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벌써 오늘로 생각해 보니 10년이 지난 기간 동안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그 사이 많은 선과 소개팅, 결혼정보회사 소개 등을 받아보았다.
사는 것이 힘들어서인지 결혼에 대한 전제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가 그 사람의 경제적 백그라운드를 안 볼 수 없는 환경인 것 같다. 학력과 현 직장, 재산 수준, 부모님의 배경 등까지는 기본적인 통과의례적 물음이고 답변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이 사람과 만났을 때(주로 여자가 한 남자를 선택하게 되었을 때), 내가 과연 경제적으로 얼마나 안 힘들게 살아갈 수 있으며 가정을 꾸리고 지낼 수 있는가와 연결이 된다. 그 미래 경제력에 대한 가늠이자, 현재 경제력(신용을 포함한)의 상태지표이기도 하다.
내가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아서, 박사학위를 고려대학교란 좋은 학교에서 받긴 했지만 학부까지 그 학교 출신은 아니라서 등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여자들이 나에게 적극적인 호감을 가지지 않았던 대부분의 공통점은 정규직 전문직 직장인이 아니었으며,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할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어떤 이는 첫 만남 면전에서 그래도 박사신데 계속 계약직으로 회사 다닐 생각은 아니시죠? 다들 인서울 4년제 대학교 교수 정도는 생각하잖아요. 생각 없으세요? 참 집은 있으시죠? 서울에 있어요? 이런 질문들을 하기도 했다. 당혹감에 나는 제대로 답해주지 못했고, 결국 차후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은 나도 나이가 40대를 넘었다. 누군가를 만나기에 굉장히 조심스럽고 두려운 나이다. 사실 거절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나 스스로 상처받기도 싫은 이유도 있다. 게다가 나 스스로의 심적 변화가 생긴 탓도 있다. 이제는 누군가를 소개받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여성의 직장은 어떤지 자기 스스로 책임질 정도의 경제력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불과 몇 년 만에 내게 일어난 큰 심적 변화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솔직한 남자들이 그러했듯 예쁘고 마음 착한 여자, 거기에 몸매까지 좋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1순위였다. 나도 이제는 사회라는 거친 풍파에 오래 노출되어 있다 보니, 이제는 바위틈 안전한 곳으로 숨어 기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
나는 미혼이기에 당연하게도 자녀가 없다. 물론 미혼인 사람은 당연하게도 자녀가 없어야 한다는 그러한 사회적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즉, 미혼모 미혼부 등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가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의 내 말은 미혼이고 자녀도 없다는 단순한 해석의 여지없는 말이었다.
나중에 어떠한 방식으로든(정상가족을 꾸리든 그렇지 아니하든) 자녀를 낳아 양육하게 되는 환경에 놓인다면 공/사교육 모두 집중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내가 내 목표한 바와 같이 만 45세 이전에 모든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조기은퇴자로서의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부모가 된다면 전적으로 아이에 대한 양육책임을 짊어지고 싶다. 그리고 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함이지만 유치원~고등학교 공/사교육에 대한 효용은 사회화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 이외 얻은 것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독한 입시경쟁의 한 복판에서 죽창을 손에 쥐어주고 살아남으라는 무책임한 말을 건네는 부모가 되고 싶지도 않다.
자신의 자아를 찾고 확장시키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대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한 아이로서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세대의 부모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공/사교육의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현실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도 알게 하고, 각국의 다른 문화권 친구들을 사귀고 대화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이 경제적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경제적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나는 이것이 앞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죽어라 제도권 교육에만 집중하라고 말하며 의대를 보내 의사를 만들어 입에 풀칠을 소고기 정도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이기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나는 이제 오늘로부터 5개월 정도 후면 세돌을 맞이하는 쌍둥이 조카가 있다. 여동생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보면 너무도 예쁘고, 부산에 홀로 자취방에 있으면 부모님 다음으로 생각나는 존재들이 바로 이 조카들이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좋은 편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미래가 긍정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여동생 내외를 몇 차례 설득하기도 했지만, 공무원 부부의 특성 탓인지 아직 나와 같이 하루하루의 미래 경제적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적은 탓인지 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대해 아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이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직접 체감하고, 가끔 밖에서 20대들을 마주하면서 보고 있기에, 우리 아이들(조카들)에 대한 미래가 몹시도 두렵다. 이는 우리 집의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모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일일 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여력이 되는 한, 우리 조카들에게 펀드를 조금씩 사서 넣어주고 있다. 큰 금액을 넣어줄 수도, 그러한 경제력도 나 스스로 없지만, 그래도 지금의 몇 백만 원은 아이들이 20~30년이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떠한 경험을 하는데 경제력이 없어 못하는 상황이 안될 정도의 금융자산으로 성장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사주고 있다.
그렇게 나의 조카들, 그리고 혹시나 너무 늦지 않게 결혼하게 되어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아이는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더 이 사회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그리고 이 같은 미래를 위해 내가 해주어야 하는 일은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도록 조력해 주고, 내 경제적 상황의 약간씩을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씨앗이나 묘목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나의 집안 아이들은 삶 자체가 공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