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직급 대신 이름으로 호칭을 사용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소속된 회사보다 클라이언트 회사가 먼저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불렸다. 직급과 관계없이 상호 존중하며 소통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물론 이 방식이 모두가 동의한 규칙은 아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전 회사에서 들었던 동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동료가 맡은 클라이언트사도 모두가 "님"으로 서로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자가 변경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는데 새로 온 사람은 실무자가 아니라 그 실무자의 상사였다. 직접적인 소통은 거의 없었고, 가끔 특이사항이 있을 때만 내용을 공유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분이 새로 합류했다며 메일로 인사를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회사 문화가 "님"으로 소통하는 것은 알겠으나 다른 회사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불리기는 싫다며 "과장님"으로 불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꽤 불쾌한 투로.
동료는 그분에게만 "~과장님"이라고 호칭을 바꿔 사용했다고 했다. 내부에서는 수평적으로 불리는 것에 적응되어 있지만, 하청업체에게는 '과장님'으로 불리고 싶었나 보다.
나는 권위 의식이 강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직급을 순간적으로 헷갈려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 편했다. 특히 승진 직후 직급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고 불쾌해하는 분들도 종종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도 이름 사용 문화가 훨씬 자유롭다고 느껴진다.
물론 이제는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도 많다 보니,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분들은 이름 대신 직급을 붙여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오랫동안 이름 호칭을 유지해 온 문화지만, 부서별로는 여전히 직급을 중시하는 곳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직급을 떠나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서로 존중만 있다면, 꼭 직급에 맞춰 부르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최근 조금 당황스럽고 불쾌한 일이 있었다.
신규 업체라 대면 미팅 없이 메일로만 업무를 진행하는 클라이언트가 있었는데, 그 회사도 우리 회사도 이름으로만 소통하고 있었다. 게다가 메일 서명에도 직급이 따로 적혀 있지 않다 보니, 내 직급은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상호 존중이 전제된 관계라면 직급 노출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상호 존중이 깨지는 순간부터 직급이 아주 민감한 요소가 될 뿐이다.
최근에 합류한 클라이언트가 대체로 작업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업무를 요청하길래, 최소 하루 전에는 내용을 달라고 안내한 적이 있다. 그러자 작업에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왔고 나는 "약 0.5일"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내 메일을 받자마자 다른 담당자에게 "이분은 0.5일 걸린다는데, 당신은 얼마나 걸려?"라고 메신저로 물어봤다는 것이다.
동일 회사 내 다른 담당자에게, 마치 '누가 더 빠른지 비교하는' 방식으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더 많은 업무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클라이언트가 모를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행동은 결코 적절한 방식이 아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한 가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호칭은 이름이든 직급이든 결국 '형식'일뿐이고, 진짜 중요한 건 서로를 대하는 태도라는 것.
서로를 동등한 파트너로 바라보는 사람 앞에서는 이름 하나만 불러도 관계가 편안해지고, 반대로 상대를 도구처럼 대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호칭을 붙여도 불편함이 남는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작은 경고처럼 다가왔다. 호칭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문제였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는, 최소한 나만큼은 누군가의 시간을, 전문성을, 그리고 존재 자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조용히 다짐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일의 분위기는 호칭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