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뿐일까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우리의 삶은 각기 다르게 흐를 테니 고유한 형태의 시간을 보내셨겠죠?
일상과 내면이 그윽하고 온전하셨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적을게요
저는 요즈음 자연에 시선을 오래 두었어요 하늘과 그 속에 있는 구름에, 풀과 그 속에 있는 푸름에, 꽃과 그 속에 있는 향기에, 계절과 그 속에서 경험하는 감각에 대하여 관찰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존재하는 고유한 모습과 그 구성 물질의 특성 덕분에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거 같아요
근래 들어 독서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종이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사랑해요 제게 독서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과정인데, 최근 저의 독서 행위를 돌아보니 안타깝게도 제가 경험하는(실재하는) 것들에 성급하게 이름표를 붙여 단정 짓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건 이해 내지 공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겠지요
구병모 작가는 무언가를 읽을 때, 읽음의 행위 끝에 도출한 결론이 틀렸을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더불어 오답이든 정답이든 간에 뭐라도 답이라는 걸 내놓는 게 미덕 내지 당위로 여겨지는 독서 교육 풍토와, 그에 따라서 주제에 대해 정확하고도 안심되는 길잡이 및 인물 행위에 대한 명료하고도 공감되는 설명과 그것의 총합 결론 격인 교훈이 책 안에 모범 답안처럼 직관적으로 제시되기를 기대하는 독해 경향은 (중략) 처음은 ‘읽는’ 데에서 비롯했기에, 그 행위의 목적어가 어떤 사태와 사람에 닿아 있다 할지라도,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라벨링은 세상을 흑과 백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은 점점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세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월의 마지막 날, 자주 가던 식당 근처를 처음으로 걸어봤어요 그제야 그곳에 예쁜 철도 길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식당으로 들어가려면 늘 이 길을 지나야 하는데, 매번 스쳐 지나가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잠시 멈춰 서 보니 길과 풀이 비로소 자각되더라고요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 열린 결말로 남겨둘게요
기타 레슨 끝나고 근처에 서점이 있길래 은희랑 구경하러 갔어요 책 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각자 3권씩 들고 나왔고요 은희는 평소에 궁금해하던 소설 3권을 샀던 것 같고, 저는 소설 한 권이랑 시집 두 권을 골랐어요 시집은 정말 이따금씩만 읽는 편인데, 그날은 유독 시집에 눈이 가더라고요
제 방에 둘 꽃과 은희에게 선물할 꽃을 함께 구입했어요 당연히 꽃은 사자마자 바로 주는 게 가장 예쁠 텐데,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하루이틀 지나서 건네게 됐거든요 이미 많이 시들해져서 조금 걱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해 줘서 고마웠어요
책 둘 곳이 없어서 돌겠어요 아직 안 읽은 것들도 수두룩한데… 그래도 모으는 재미가 있긴 해요 저는 소장 욕구가 강해서 빌려 읽기보다는, 도서 한정으로 제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좋아요 게다가 읽을 때 밑줄 긋고 이것저것 적어두는 편이라 결국은 사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페이지에 흔적을 남기는 게 좋아요 나중에 다시 읽을 때 그 부분에 한 번 더 머물기도 좋고, 그때와 지금의 생각 차이를 경험하는 것도 좋고요
아 참, 경진대회 어땠냐면요 망했어요 꼴찌 했거든요 솔직히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했고… 많이 아쉬웠어요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겠죠 몇 주 내리 준비했는데 이밖에도 할 일은 쌓여있고 마음은 복잡하고… 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 떨거나 발표를 절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이 모든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값지다고 생각하려고요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에요 기상학적으로 11월은 가을이라고 하던데, 체감상으로는 가을과 겨울 그 어디쯤인 것 같아요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온통 가을 같은데, 몸으로 느껴지는 것들에서는 겨울이 느껴져요 춥잖아요
계절은 왜 네 개뿐일까요?
왜 네 계절로만 분류하는 건가요?
정말 그뿐일까요?
앞쪽에 쓴 이야기랑도 닿아 있는 부분인데, 우리 모두 이름을 붙이고 정의 내리는 것에 꽤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고민 같은 경우도 그렇잖아요 표현하자면 문장으로 구구절절 풀어낼 수 있는데, 한 단어로 정립해 버리면 왠지 문제가 정리된 것 같고 마음이 조금 편해지지 않던가요? 복합적인 상태를 통틀어 ‘우울’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훨씬 문제가 간단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겠죠 어떤 점에서는 분명 편하고 좋은 면이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마땅히 다른 의미와 결과도 함께 따라올 거예요
이제 슬슬 글을 줄일까 해요 저는 앞서 비춰 보인 삶을 통해, 여태 적어 내려온 생각들을 곱씹으며 요즘을 보냈어요 독자분들의 삶도 무지하게 궁금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사는 우리에게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쉽지는 않겠죠
아까 제가 주관적인 세계라는 말을 했었나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각기 다른 해석을 해요 상황을 인식하는 방식이든 느끼는 감정이든 고정된 시공간 속에서 누구나 다른 경험을 하고 있죠 지금까지 글을 적은 저나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모두가 부단히 노력하고 계실 거라는 거 알아요
그 노력에는 옳고 그름의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순수한 가치가 있음을 꼭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