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by Yeon

구병모 작가의 절창을 읽고 제가 느꼈던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책은 제 벗 *은희와 함께 읽고자 구입했습니다. 독서가 끝나면 감상문을 서로 교환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계획은 어쩌다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그래도 각자가 무엇을 느꼈는지 조금은 나눌 수 있었고, 이제는 제가 그 경험을 털어놓을 타이밍이 온 듯하네요.


*은희는 단어 몇 개로는 도무지 다 설명할 수 없는 벗이라, 언젠가 별도의 글로 천천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읽는 동안 마음이 여러 번 울컥거렸습니다.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윤리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제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공감하는 방식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렇다는 건, 제가 스스로 사고하는 일을 때때로 나쁘다고 여겨왔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윤리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절창에서 분명 위로를 받았음에도 제가 아직은 어떤 제한된 사고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책에서는 아무리 선명하게 들여다보았다고 한들 사람의 머릿속은 어떤 의미에서도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같은 장면을 두고 두 사람이 사건의 경위를 설명한다고 가정하면, 저는 한쪽의 진술에는 타당성이 있고 다른 한쪽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답을 내려야 할 때는 반드시 누군가의 말이 정답일 것만 같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과연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이, 사실은 그릇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쉽게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니까요. 나에게 합리적인 주장을 그대들이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오류를 잉태하는 현상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오답이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모두가 정답일 수도 있겠지요.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그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역시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오언과 아가씨의 관계는 사랑일 수도 있고,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모두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허구일 수도 있고, 상상 혹은 망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유가 나를 좀먹을 수도, 전혀 훼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생각하고 읽고 쓰는 모든 행동에서 반드시 어떤 결론이나 값을 도출해 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원인을 규명하려 듭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어떤 결핍인지, 혹은 병의 징후인지 알 수 없지만요. 답이 없으니, 마음껏 생각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이 문단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왜 글을 읽으시나요.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자꾸만 왜라는 질문을 들이밀게 되는 걸까요.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인지, 저 역시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상황과 감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언제나 왜라는 질문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유를 찾으려 하고, 그러기 위해서 왜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필요합니다. 뭐든 옳습니다. 그대가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옳은 답입니다.


절창을 수록하신 구병모 작가님에게 감사 인사를, 이해를 향해 면면히 애쓰고 있는 모든 지구인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