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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들이 Oct 29. 2021

3. 살 수 있다!

<그래서 오름> 세 번째 이야기

제목부터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는, 내가 산에 오를 때마다 하는 결심이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이유가 '소비 결심'을 하기 위해서 라니…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내게 '살 수 있다'라는 건 단순히 어떤 물건을 구매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엔 '내 삶이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을 함께 품고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불쑥 과거에 겪은 불행과 현재의 불안정한 감정이 튀어나온다. 이는 산을 오를 때만 그런 게 아니다. 산 아래에서도 자주 있는 일인데, 그때마다 이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에 휩싸여 휘둘리고 만다. 온 마음을 헤집고 다니는 이러한 생각을 떨쳐내고 싶었다. 하지만 산 아래에서는 쉽지 않았다. 과거의 일을 곱씹으며 분노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재에 분개하며 오래도록 나쁜 기억과 감정에 묶여 있곤 했다. 그러면 내 삶 전체가 그 감정에 묶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산을 오를 때는 금방 떨쳐낼 수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산 중턱의 휴식처만 떠올리며, 오르면 됐다. 멈추지 않고 열심히 오르다가, 잠시 사람이 없는 구간에선 마스크를 잠시 내려 풀내음을 들이 마시면 됐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목표와 깊게 들이마신 숨 한 번이,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던 감정과 기억의 고리를 슥- 풀어냈다.


그렇게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도착한 휴식처에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것들만 생각했다. 여기엔 ‘갖고 싶은 것’들이 포함된다. 쓸모없거나 사치스러운 물건을 탐하는 게 아니다. 내 삶의 질을 향상시킬 물건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꼭 사고 싶었지만, 형편상 탐할 수 없었던 것들을 올해는 손에 쥐겠다고 다짐한다. 못 가져서 안달복달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다 보면 반드시 내 힘으로 얻을 수 있을 거라도 되새긴다. 산 위에서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정말 빠른 시일 내에 내 소비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하게 막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럼 마스크로 감춘 얼굴에 웃음이 비죽 새어 나오는 게 느껴진다. 이럴 땐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 안 그럼 산 위에서 홀로 실실 웃는 미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니깐 말이다.


살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산을 오르는 것처럼, 내 삶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앞으로 더 나아질 거다. 고로 나는 살 수 있다! 산 아래의 고민들은 작아진 건물의 크기만큼이나 보잘 것없다. 그러니 내 마음과 삶을 뒤흔들 수 없다.


이처럼 말이 씨가 된다면, 이왕이면 잘 되는 씨를 뿌리기 위해 나는 주말마다 산에 오른다. 더불어 이 글을 쓰고 보니, 나는 살기 위해 살 수 있는 삶을 산에서 꿈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에피소드 추가)

등산을 시작하고 얼마 후, 학자금 대출 상환이 끝났다. 거의 10년 만에 갚은 거라, 기분이 얼떨떨했다. 나를 울리던 학자금 대출에 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보면 어떤 불행이 평생 지속되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는다. 다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겨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학자금 대출도 끝났으니 ‘살 수 있다.’를 이룰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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