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나라, 과소평가하는 나라, 무관심한 나라
미국에서 이십여 년을 사는 동안 한결같이 느꼈던 건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거다. 뭐든 미국 거, 미국 사람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낫다는 믿음이 아주 강하다. 반면에 무조건적으로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낫다고 믿는 한국인은 드물다. 해외의 교포들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한국사람들 말이다.
미국에 오자마자 정말 놀랐던 건 뒤떨어져 보이는 기술력이었다. 한국서 싸이월드로 온라인 친구들과 일촌을 맺으며 핸드폰으로 이메일 확인하고 셀카 찍고 살다가 미국 와서 갖게 된 핸드폰은 전화통화와 문자만 가능한 완전 구식폰이었다. 그런데 그게 미국에서는 나름 최신 사양이었다는 거다. 페이스북은 2004년에야 만들어졌고 2006년에야 일반 대중에게 친근한 존재가 되었으니 미국의 SNS도 역시 뒤처져도 한참 뒤처져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한국의 발전된 기술력을 이야기하면 미국 친구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동기들과 아이맥스 영화관에 갔을 때 오클라호마 출신 동기가 나에게, “너 이런 데 첨 와보지?”라고 말하길래 서울서 여러 번 갔었다고 했더니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 친구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맥스 영화관을 갔던 것이다.
미국은 50개 주가 다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도 다른 나라다. 그중에 낙후된 나라도 있고 발전된 나라도 있다. 그런 나라들을 묶어 놓은 게 미합중국, 연합한 나라‘들’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합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힘센 하나의 나라로 보고 미국 사람들이 모든 면에 앞서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대다수가 시골 사람들이고 대도시 문화를 접한 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우리가 한국의 지방 소도시를 작다고 하는데 미국의 주도들이 있는 시들은 우리나라 소도시보다 더 작은 경우가 많다. 밀양이나 여수는 미국서는 대도시다.
한국은 대도시 인구가 절반을 넘는 나라다. 세계적 트렌드에 민감하고 교육 수준도 월등히 높은 국가인데도 국민들은 한국을 늘 ‘작은 나라’라고 칭하며 서양을 부러워한다. 요즘 한국 사람들의 최고 이주 선호국인 스위스나 덴마크는 남한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인데도 말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대도시의 편리함에 바로 익숙해지고 미국으로 돌아오면 늘 일상의 불편함이 힘든데도,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은 나만 보면 살기 힘든 한국에 대해 한탄하며 내가 부럽다고들 한다. 아무리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설명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심지어 미국뿐 아니라 일본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자주 접한다.
과도한 자부심의 미국과 근거 없이 나라를 과소평가하는 한국에 비하면 일본사람들은 국가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뉴스에는 극우 정권의 목소리만 나오니 일본 사람들이 다 그런가 보다 싶지만 내가 만난 일본사람들 중에 매일 뉴스 보는 사람들 별로 없었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일본 사람들도 거의 못 본 거 같고 내 눈에 일본인들은 그냥 서로서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삶을 알아서 살고 있는 걸로 보인다. 게다가 일본은 전체적으로 변화가 느려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걸 모르겠다. 이천 년대 초 한국을 보는 느낌이랄까.
사는 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면, 그냥 구경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살아보고 나면 내부와 외부를 보는 시각이 상당히 객관적으로 바뀌고 따라서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내 나라도 다른 나라를 보듯 거리를 두고 보게 되니 실상을 깨닫게 되고.
한국이 답답해서 떠난 지 이십여 년, 이제 미국이 답답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