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보통 교수들끼리는 이름을 부르는데 간혹 본인을 닥터 00이라고 불러달라는 동료가 있다. 자신의 학벌과 직업에 유난히 자부심을 가진 그런 교수들을 볼 때면 좀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들의 본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음도 알기에 그 모습이 짠해 보인다.
일하며 공부하며 아등바등 논문을 쓰고 겨우 학위를 따서 2011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휴가를 갔다. 내 인생 최고의 고비를 넘겨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으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의 자신감은 쑥 들어가고 오히려 쭈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즐겁게 수다 떠는 친구들의 말을 거의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다 물어볼 수도 없고 하다못해 농담도 못 알아들으니 이건 뭐 초등학생이 부모님 친목회에 따라간 느낌이랄까. 전공분야 이론만 파고들고 내 이론 만들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볼 여유 없이 수년을 보내어 우물 안 개구리 중에서도 지박령 개구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논문을 쓰며 보낸 오랜 시간은 내게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모든 분야에 무지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얻은 전공 지식과 전문성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 후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좀 이해할 정도로 따라잡는데 다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알면 알수록 나의 무식함이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계속 배우고 익혀도 늘 부족한 느낌이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는 전문가의 인터뷰를 들을 때마다 어쩜 저렇게 유식할까 하며 부러워한다.
그래서 미드 빅뱅이론은 내게는 관찰예능이다. 드라마 속 천재 박사들의 바보 같은 일상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그렇게 잘난 바보들이 많고 그들은 정말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닥터 00이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한다. 정말 짠하다.
내가 속한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오래전에 취득한 학위나 과거에 쓴 논문들은 이제 세상을 돕지도 못하고 나를 돕지도 못하는 것 같다. 다행히 친구들 덕에 이런 사실을 일찍 깨달은 건 정말 행운이다. 세상을 알기 위해 공부하고 깊게 사고하려 노력하며 때론 엉뚱한 시도도 하고 실망도 하면서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그런 나날이 나를 깨어있게 한다.
그리고 무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내게 활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