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쿠팡 사태와 영업정지의 필요성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은 시장의 주체가 아니다

by 나팔수


[논단] 쿠팡 사태와 영업정지의 필요성 -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은 시장의 주체가 아니다


1. 신뢰가 붕괴된 숫자


3370만 명.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이름이 있고, 주소가 있고, 구매 이력과 이동의 흔적이 있다. 한 사회가 기업에게 맡긴 신뢰의 총량이며, 동시에 그 신뢰가 얼마나 허술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언제나 심각하지만, 이번 사안이 특히 중대한 이유는 사고 그 자체보다 사고 이후에 드러난 대응 방식 때문이다.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기술은 완벽하지 않고, 보안 시스템 역시 인간이 설계한 이상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사고 이후의 대응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2. 책임자는 없고, 방패만 있었다


국회 청문회가 열렸지만, 사태의 최종 책임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사결정의 정점에 있는 김범석은 해외에 머물렀고, 대신 한국어로 충분한 질의응답조차 어려운 미국인 법무 책임자가 ‘임시 대표’라는 직함으로 청문회장에 앉았다.


이 장면은 우연도, 실무적 판단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더 정확히 말하면 무엇을 책임지고 무엇을 피하려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청문회장은 책임이 설명되는 공간이 아니라, 책임이 차단되는 공간으로 변했다.


3. 사고보다 더 심각한 것은 태도다


대규모 정보 유출은 기술적 실패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대응은 선택의 문제다.

책임자가 직접 나와 설명할 것인가.

자료를 공개하고 검증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법률적 방어를 최우선에 둘 것인가.


쿠팡의 선택은 분명했다. 설명보다 방어를 택했고, 책임보다 관리 가능한 리스크를 택했다. 그 결과 청문회는 사실 규명의 장이 아니라 시간을 벌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절차로 전락했다. 이는 무성의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 질문권과 국민의 알 권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4. 플랫폼 기업은 더 이상 ‘사적 주체’가 아니다


플랫폼 기업은 단순한 민간 사업자가 아니다. 개인의 소비, 이동, 관계, 생활 패턴을 대규모로 축적·분석하는 순간, 그 기업은 이미 사회 인프라의 일부가 된다. 인프라를 운영하는 주체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윤 이전에 책임과 투명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대응은 일관되다.

최종 책임자는 해외에 있고,

국회의 요구에는 불출석으로 응답하며,

핵심 자료 제출은 거부되고,

법무 책임자만 전면에 나섰다.


이는 우발적인 혼선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의 주체가 아니라 규제의 대상, 더 정확히는 관리해야 할 리스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다.


5. 왜 이 사안은 ‘기업의 자율’로 남겨둘 수 없는가


기업의 자율은 책임 위에서만 성립한다.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며, 최종 책임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순간 자율은 특권으로 변한다. 이번 사안은 기업의 자율에 맡길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


국회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태도는 단순한 불응이 아니라, 이 사회의 제도를 얼마나 가볍게 보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행위다.


영업정지는 감정적 처벌이 아니다

영업정지를 이야기하면 곧바로 “과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최종 책임자가 국회에 나오지 않으며, 자료 제출마저 거부한 상황에서도 영업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영업정지는 보복이 아니다. 그것은 합리적인 행정 수단이다. 개인정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개인의 신용과 안전, 일상에 직결된 기반 자산이다. 그 관리 능력과 책임 의지가 검증되지 않았다면,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전면 점검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 아니라 상식적인 안전 조치다.


6. 과징금이 더 이상 제재가 되지 못할 때


대형 플랫폼 기업에게 과징금은 예외적 처벌이 아니라 사업 모델에 포함된 비용이다. 사고가 발생하고, 벌금을 내고, 다시 영업을 이어가는 공식이 반복되는 한, 제재는 교훈이 되지 않는다. 영업정지는 처음으로 사고 그 자체뿐 아니라 사고 이후의 태도까지 평가 대상으로 삼는 조치다.


7. 책임 회피는 우발이 아니라 구조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불출석, 자료 거부, 법률 방패막이라는 조합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대응 방식이다. 의도된 회피에는 의도된 제재가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은 다시 계산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정보가 유출되든, 결국 영업은 계속된다고.


8. 영업정지는 사회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영업정지는 기업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이 사회가 기업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확인하는 행위다.


이 나라에서 사업을 하려면 이 나라의 법과 제도, 그리고 국민의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이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책임 있는 기업과 무책임한 기업을 구분할 이유는 사라진다.


9. 분노 이후에 남겨야 할 것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피로가 쌓이고, 피로는 무기력으로 변한다. 그 무기력 위에서 책임 회피는 반복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의 확산이 아니라 기억의 지속이며,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제도의 작동이다.


영업정지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소한 다음 기업에게는 분명한 신호를 남길 수 있다.

이 나라에서는 대규모 책임 회피 이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영업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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