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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Oct 23. 2024

어쩌다 제주

육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막연하게나마 제주 살이를 꿈꿔보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랬다. 거의 해마다 제주를 드나들긴 했지만 떠나는 날은 늘 아쉬움이 가득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치 무슨 주문을 외듯 '딱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로 늘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행 말고 진짜 '삶'을 살기 위해 제주에 왔다. 꿈이 이루어진 걸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걸까.


"어쩌다 제주에 오신 거예요?"

제주에서 만난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아닐까 싶다. 질문의 대부분은, 내가 살고 있는 표선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아이 교육 때문에 왔을 거라는 추측이 기저에 깔려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내가 제주까지 오게 된 진짜 이유를 단순히 교육 문제로만 단정 짓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보다는 훨씬 복잡한, 조금 더 과장하자면 마치 운명과 같은 무언가가 나를 제주로 이끌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그 시작은 무척 사소한 대화의 한 토막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것을 '김 작가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고 줄곧 표현하곤 했다.



2022년 8월의 어느 날, 삼겹살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맛있게 익어가는 소리와 송골송골 이슬이 맺힌 맥주캔을 시원하게 따는 소리가 김천 작은 마을의 고요한 밤하늘을 가득 메운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함께 있을 때면 영락없이 20대 초반의 대학생에 완벽하게 빙의하는 나와 그녀들이 모처럼 함께 밤을 보낸 날이다. 무리 중 한 친구의 부모님이 시골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계신데 비어있는 날이 많다며 우리를 초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도심에서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선명한 별이 촘촘히 박힌 하늘을 지붕 삼아 노릇하게 구워지는 삼겹살을 뒤집어가며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와 함께 각자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우리의 화제는 자녀 양육, 남편과 시댁, 재테크, 요 며칠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뉴스 몇 토막, 자잘한 정보들로 훅 훅 넘어갔다. 우리의 신체 어딘가에는 화수분과 같은 이야깃주머니가 하나 혹은 몇 개쯤 달려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게 대화의 주제가 수차례 바뀌어가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제주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화의 물꼬를 튼 건 다큐멘터리 방송작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우리 사이에선 '김 작가'로 통하는 친구다. 제법 오랜 시간 방송 업계에 종사한 그녀답게 경험도 인맥도 넘사벽 수준으로 풍부해서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다큐 찍으면서 친해진 언니가 있는데, 몇 해 전에 직장 그만두고 제주로 갔거든. 지역이 구좌였나? 처음엔 그냥 쉬러 간 거였는데 지내다 보니까 동네에 버려지는 당근이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자기는 비싸서 못 사 먹는 그 구좌 당근을 목장에 있는 말들은 막 쌓아놓고 먹더라는 거야. 그래서 그 언니가 버려지는 당근을 얻어다가 잼을 만들어서 주변에 나누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꽤 괜찮았나 봐. 동네에 작은 가게를 오픈해서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대. 그런데 어쩌다 보니 또 운 좋게도 그걸 호텔 몇 군데에 납품하게 돼서 지금은 공장도 짓고 귤 밭도 사서 체험 농장도 같이 하고 있어."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들었다면 그냥 흘려들었을 법한 그 이야기가 그 순간 왜인지 내게 제주로 가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뭐든 한번 꽂히면 실행도 종결도 무척 빠른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주행을 결심했다.  

'그래, 이거야! 나도 제주에 가서 새 삶을 살아야겠어.'

일단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내 두뇌는 제주로 떠나야만 하는 온갖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내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기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집 근처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이사를 고려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나 역시 점차 늘어나는 여유 시간을 어쩌지 못하고 막연히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때였기에 김 작가의 이야기는 내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야 고백하지만 내가 떠나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시아버지와의 분가 후 우리 가족은 일정한 물리적 거리를 두며 지내고 있었는데, 역시나 남편은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본가에 불려 다니는 일이 예사였다. 아이가 제법 자랐기에 나도 예전처럼 그의 부재가 힘겹지 않았고 또 어느 정도는 포기 상태이기도 했지만 내심 못마땅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곁에서 지켜보며 혼자 끙끙 앓느니, 차라리 내가 독립해 나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남편은 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효도할 수 있고, 시아버지는 더 자주 아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아이는 상대적으로 학업 스트레스가 덜한 시골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니 그야말로 모두에게 윈윈이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는 당장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역시나 뭐든 내 의견에 따르는 그답게 남편은 나의 제주행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오히려 나보다 더 열심히 제주 이주에 대해 알아보더니 이왕 제주에 살 거면 ib 교육으로 알려진 표선이 어떻겠냐며 지역까지 딱 짚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대외적으로는 아들 교육을 위해 제주로 떠난 맹모가 되었다.


아무 의도 없이 김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하나의 트리거가 되어 나를 제주 도민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내가 제주에 온 목적을 찾지 못했다. 당시엔 당장 제주에 오기만 하면 뭔가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여행지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써의 제주는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에 온 첫 한 해는 적응 기간이라 쳐도, 어느덧 2년을 꽉 채워가는 시점이 되니 슬슬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억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나는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며 때를 기다릴 뿐이다. 제주에서의 남은 시간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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